두 눈이 왕방울만 한 16세 소녀가 1967년 히트곡 '안개'로 대한민국 청춘남녀를 열광시켰다. 소녀는 이후 10여년간 '꽃밭에서' '무인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고 털어놔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시봉' 멤버 송창식이 "최고로 노래 잘한다"고 열렬히 흠모했다는 디바(diva) 정훈희(61)씨 얘기다.

정씨는 '안녕' 등을 히트시킨 로커 김태화(63)씨와 그렇게 부부가 됐다. 두 사람은 "우리가 사랑 하나로 결혼한 것처럼 두 아들도 소박하게 결혼시키겠다"며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동참했다.

"우리 부부도 정말 소박하게 결혼했어요. 두 아들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 조촐하게 결혼시키고 싶어요."(정씨)

부부는 1987년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하객은 양가 합쳐 50여명. 피로연은 교회 앞 설렁탕집에서 했다. 꽃길 장식도 없이 드레스와 턱시도만 입고 식을 올렸다. 당시 네 살이던 큰아들 대한(30)씨가 꽃다발을 들고 들러리를 섰다. 그해 둘째 아들 민국(25)씨가 태어났다.

70년대를 풍미한 록커와 디바가 어느덧 장성한 아들 둘을 장가보내야 할 혼주가 됐다. 25일 부산 기장군의 카페에서 만난 김태화·정훈희씨 부부는“우리 애들도 자기 힘으로 작은 결혼식 올리게 하겠다”고 말했다.

부부는 "그동안 두 아들이 연애하거나 여자친구를 데려왔을 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지 단 한 번도 '누구네 딸이냐' '조건이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면서 "평소 두 아들에게 '형편에 맞게 알아서 결혼하라'고 쭉 교육해왔다"고 했다.

김씨는 "살아 보니 결혼에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아내와 제가 결혼할 때도 사람들이 '조건이 안 맞는다'고 반대를 많이 했어요. '1년도 못 가 헤어질 테니 한번 보라'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보세요, 30년 넘게 부부로 잘 살고 있잖아요. 혼수를 얼마를 해왔다, 얼마나 큰 집을 해왔다, 그런 조건은 중요하지 않아요.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중요하죠."

두 사람은 "결혼식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축복받는 행사가 되어야 하는데 요즘 결혼식은 점점 '보여주기'식 행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부부가 때로는 따로따로, 때로는 나란히 수많은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진심으로 '멋지다'고 감동하고 돌아온 결혼식은 많지 않았다. 김씨는 "결혼식 날 신랑·신부 가족들이 '신랑 측 하객이 더 많이 왔네' '신부 측 하객이 더 많이 왔네' 하면서 축의금을 걷고 세는 모습을 보면 축하 파티가 아니라 꼭 '장사' 같다"고 했다.

정씨는 "주위에서 자기 집을 팔아서 자식들 신혼집을 마련해주는 사람, 노후 자금을 털어서 결혼식 화려하게 치러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건 아닌데' 싶었다"고 했다. "자기 삶을 포기하고 애들을 도와주면 뭐하나요. 그만큼 나이 들면 자식들이 돌봐주기를 바라게 되잖아요. 자기 자신도 힘들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정씨는 "결혼 문화가 바뀌려면 어머니 세대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들 둔 어머니는 '내 아들이 신혼집 못 해갔다고 며느리 눈치 보고 살지 않을까', 딸 가진 어머니는 '예단 부실하다고 내 딸이 구박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정씨는 "그런 엄마들 생각이 자녀들 결혼을 더 어렵게 한다"면서 "세상 모든 엄마가 '내가 시어머니도 될 수 있고, 친정어머니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부부는 두 아들이 결혼할 때 해줄 말을 이미 준비해뒀다. "'네 선택을 지지한다. 하지만 너의 선택에 책임을 지라'고 할 거예요. 부모에게 의지하기만 해서는 책임감을 가질 수 없죠. 아이들 힘으로 올리는 작은 결혼식은 그래서 의미가 커요."

남편도 가수, 아내도 가수지만 부부가 지금까지 남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건 딱 세 번뿐이다. 세 번 모두 부부가 듀엣으로 '우리는 하나'를 불렀다. '당신이 곁에 있으니 아무런 두려움 없어요/어떤 욕심도 없어요/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지 10년 만인 1989년 나왔다. 지금 두 사람은 네 번째 축가를 부를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연예인 후배나 지인 결혼식에서가 아니다. 부부는 "어려운 사정으로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살다가 자기 힘으로 작은 결혼식 올리는 사람을 위해 우리 둘이 이 노래를 축가로 불러주고 싶다"며 "초대해주면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했다.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 참여하려면 이메일로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보내주세요. 약속 증서를 댁으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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