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납덩이 수억 킬로그램이 떨어진 느낌입니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남산창작센터에서 만난 뮤지컬 '영웅'의 배우 김수용(36)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 평소 잘 놀고 잘 웃어 개구쟁이로 유명한 그는 내달 16일 개막을 앞두고 "웬만큼 지치지 않고는 잠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수용은 '영웅' 연출가인 윤호진(64)씨의 '티켓 혁명' 한가운데에 선 두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이번 공연에서 안중근 역을 임현수(33)와 번갈아 한다. 개막을 한 달 앞두고 윤 대표가 발표한 '표 값 5만원' 선언 〈본지 14일자 A1·27면 보도〉은 뮤지컬계를 들썩이게 한 핵폭탄이었다. VIP석·R석 등 등급 구분을 없애고 기존 가격의 3분의 1 수준인 5만원과 3만원에 표를 팔겠다는 윤 대표의 실험이 과연 성공하느냐에 모든 관계자와 관객의 시선이 쏠려 있다.
"이번 일에 내 목숨을 걸었다"고 하는 윤 대표가 자신한 것은 작품성과 실력 있는 배우. 김수용과 임현수에게 윤 대표가 던진 일성(一聲)은 "관람료가 떨어졌으니, 수준은 오히려 높여야 한다"였다. "너희들이 잘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결정을 내린 윤 대표를 두고 "돈키호테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파격적으로 가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김수용) "역시 무대는 인생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어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임현수)
작품 외적인 배경도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초연 때 안중근인 뮤지컬 스타 류정한과 정성화를 넘어야 한다는 기대 역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영웅' 초연 때 오디션을 봤던 김수용은 "오디션장에서 대기하던 중, 벽을 뚫고 들려오는 정성화 형의 노래를 듣고 '형이 되겠네, 게임 끝이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 후로 '영웅'은 인연이 없는 작품이라고 여겼는데 다른 때 아닌 지금, 기회가 주어졌으니 사력을 다할 각오입니다."
◇"이 얼굴로도 안중근 됩니다"
1983년 드라마 '간난이'에서 "엄니, 배고파유"라며 떼쓰고 울던 동생 영구가 바로 그다. 그때 일곱 살이었다. 어릴 때는 얼굴을 새까맣게 칠해 몰랐는데, 어른이 되니 남들이 '백인보다 하얗다' '러시아풍이다'고 할 정도로 서구적인 외모다. 안중근 역을 한다고 했더니 "그 얼굴로 되겠느냐"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 "새로운 역에 도전할 때마다 "되겠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뮤지컬 데뷔작 '풋루스'(2002) 때는 물론이고, '그리스' '렌트' 때도 마찬가지였죠." 수없이 '되겠느냐'를 깨고 '된다'를 보여주면서 10년을 버티니 안중근이 됐다.
◇회사원에서 뒤늦게 뮤지컬 배우로
데뷔 4년차 배우 임현수에게는 '영웅'이 첫 주연작이다. 지난번 '영웅' 공연 때는 외무대신이었다. "오디션 볼 때 이미 가슴이 터졌어요. 초연 때부터 다져온 태산 같은 작품이니까요." 고등학교 때 부친이 대장암으로 별세한 후, 장남(長男)인 그는 회계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어머니와 지체장애 2급 남동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다. 노래 잘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돈이 될까' 싶어 생각도 안 했다. 경영학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서 행로가 바뀌었다. 교회 지인의 소개로 보컬 선생님을 만나 10개월 공부 만에 성악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나는 장남'이라는 생각에 회사에 들어갔으나 '이 길이 아니다'는 고민 역시 늘 따라다녔다.
뮤지컬 경력은 태풍과 함께 시작됐다. 2008년 회사를 그만두고 노래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태풍 예보가 있던 날, 다른 배우 49명과 함께 갈라 무대에 섰다. 지켜보는 관객은 5명이었다. 임현수는 가면까지 차려 쓰고 '오페라의 유령' 아리아와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열창했다. "관객 5명 앞에서도 너무나 행복했다"는 그는 '모차르트!'와 '피맛골 연가'의 조연을 거쳐 안중근을 만났다.
▲뮤지컬 '영웅', 10월 16일~11월 18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02)2250-5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