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를 놓고 충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15일이었다. 홍콩 시위대 14명이 이날 일본 해경(海警)의 저지를 뚫고 센카쿠 에 상륙한 것이다. 댜오위다오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서남쪽으로 약 400㎞, 중국 대륙 동쪽에서 350㎞가량 떨어진 8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중국과 일본은 경제 규모에서 세계 2위와 3위인 강국이다. 그런 두 나라가 총면적 6.32㎢에 불과한 무인도들을 놓고 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분쟁은 다가오는 중·일 간의 경쟁·갈등의 서막(序幕)일 수 있다. 세계 언론도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중·일 갈등을 주목하고 있다. IHT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와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26일자 1면에 센카쿠 일대 해역에서 일본 해경이 대만 어선을 향해 물대포를 뿜어대는 사진을 실었다. 중국은 바로 이날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호의 취역식을 가졌다.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이 행사에 총출동했다. 2012년 9월 25일은 600년 전인 명(明)나라 시절 스스로 세계 최강의 해군을 해체했던 중국이 다시 세계의 바다를 무대로 삼는 항모를 처음 실전 배치한 날이다.

지금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중·일이 벌이고 있는 이 심상치 않은 경쟁과 갈등은 우리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 일본은 지난 한 달 반 동안 중국과 센카쿠를 놓고 충돌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독도를 겨냥한 도발을 벌였다. 중국 역시 우리의 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를 중국 선박과 항공기의 감시 대상에 집어넣었다. 중·일은 과거에도 한반도를 무대 삼아 패권 다툼을 벌였던 나라들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지난 한 달 반 동안 우리나라의 운명과 직결된 이번 중·일 갈등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하루에도 문서나 구두로 10여건이 넘는 논평과 성명, 브리핑 등을 쏟아내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 문제에 관해선 입을 다물었다.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25일 강원도 양구의 국군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았다. 그는 이어 21사단 여군 장교·부사관들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안보에 허점이 있으면 지진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로 땅이 갈라지면 즐거운 파티고 뭐고 다 필요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중국과 일본 간의 '거대한 지진'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최북단 기차역인 도라산역을 찾아 한반도 평화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평화가 곧 경제"라며 "남북 경제 연합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 역시 동(東)아시아에 드리운 중·일 갈등의 그림자에 대해선 언급한 적이 없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지난 19일 출마 선언에서 "안보와 평화는 함께 가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그가 어떤 안보관과 외교 철학을 갖고 있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본지는 최근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인 ‘한미 미사일 지침’에 관한 박·문·안 세 후보의 입장을 물었다. 세 후보의 답변은 가급적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듯 정형화된 모범 답안에 가까웠다.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호는 세계 최강인 미국의 항모에 비하면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한지도 분명치 않고, 배수량도 6만7000t 안팎이다. 10만t급 핵 추진 항모 11척을 가진 미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중국의 경제성장을 감안하면 그 격차는 빠른 속도로 좁혀질 것이다. 일본은 70여년 전 미국(8척)보다 많은 9척의 항모를 가졌던 나라다. 중·일은 이번 센카쿠 갈등을 계기로 군비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에 따른 파고(波高)는 한반도로 몰아닥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80여일 뒤면 외교·안보에 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주요 후보들과 정당들은 하나같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국제 정세의 변화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의 대선 후보들과 정치인들이 과연 구한말(舊韓末)의 위정자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