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를 전부 제 손으로 썼어요. 핸드메이드(Handmade)죠. 물론 다른 작가들은 발로 썼겠느냐마는, 등단하기 전부터 저는 저 자신이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다르게 쓰는 작가라 생각해왔고, 그게 제 자부심의 원천이에요. 저 스스로 전과 다르게 쓰려고 애썼다는 의미죠."
박형서(40)의 소설집 '핸드메이드 픽션'(문학동네)은 압축하면 로맨스·판타지·과학소설·신화·정신분석 등 세상의 모든 담론을 분방하게 뒤섞은 '한국형 기담(奇談)'이다. 2006년부터 발표한 8편의 단편을 묶었다. '다르게 쓴다'에 문학적 방점을 찍은 이 소설집은 8개 이상의 목소리가 다성악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책 제목과 동명의 단편이 없는 이유는 하나의 일관된 목소리가 없기 때문. 그래서 동인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반응도 "각각의 이야기마다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요약된다. "기본적으로 재미있으며, 그 재미 속에서 삶의 불가해한 역설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는 평이다.
단편 '너와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은 작고 외진 마을에서 벌어진 희한한 죽음을 추적한다. 희귀하게도 '너'를 주인공으로 한 일인칭 관찰자 시점. 처음엔 낯선 이방인이, 며칠 후엔 마을 이장이 호숫가 바위의 구멍에 머리를 처박은 채 축 늘어진다. 영문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죽은 줄 알고 낫으로 목을 따서 머리를 빼낸다. 주인공 '너'는 두 죽음의 원인을 밝히겠다며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데, 알고 보니 범인은 땅벌들. '너'는 벌떼를 피해 정신없이 달리다 앞서 두 목숨을 집어삼킨 바위 구멍에 턱, 하고 갇힌다.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희열을 느끼는 것도 찰나, 사람들은 '너' 또한 죽었다고 생각하고 숫돌에 낫을 갈기 시작한다. "모든 죽음엔 사연이 있고, 모든 사연은 슬프다"(29쪽)고 되뇌는 벌들의 독백이 '너'의 죽음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하다.
박형서의 작품에선 천년을 사는 불사(不死)의 존재가 암컷 쥐와 결혼해 오대양을 활보하고, '성범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성범수'라는 이름의 멸치로 변해가는 장면이 현실세계와 맞물린다. 박형서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은 바로 이 대목에서 재확인된다. 소재 자체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서사를 대담하게 밀고 나가 자기만의 인문학적 성찰로 마무리하기. 작가는 "소설의 유일한 전통은 기존의 것들을 깨부수는 것 아닌가.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의 삶을 통해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래서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대답의 장르가 아니라 질문의 장르다"라고 했다.
그는 종종 먼 데로 여행을 떠나 이야기의 실마리를 길어올린다. 첫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를 쓸 때는 7개월간 태국에 머물렀고, 올여름엔 미얀마에서 20여일을 보내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홍수가 나서 호텔에서 구호 튜브를 줬어요. 튜브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자다 보니 튜브가 화장실로 떠내려간 거예요. 알고 보니 거기에 커다란 배수구가 있어서 투숙객들 모두가 튜브 타고 와 있더라고요."
현실도 소설도 이 작가에게는 기담이다. 그는 "아직은 '박형서적'인 뭔가가 등장하지 않았고 등장할 때도 아니다. 계속해서 탐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서는…
여섯 살 때 청력을 완전히 상실해 다시 회복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어쩌면 그 2년간의 고요가 소설가의 바탕이 되었는지도. 200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를 펴냈다. '핸드메이드 픽션'은 세 번째 소설집. 글을 쓸 땐 머릿속으로 기승전결을 완벽하게 갖춘 뒤 '이젠 써야겠다' 싶을 때 몰아서 확 써버린다. 1972년 춘천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