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석 변호사는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실천한 것뿐”이라면서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사진은 대한변협 명부에 실린 것.

2009년 5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서 깊은 성당 '홀리 패밀리 처치(Holy Family Church)'. 키 큰 신랑과 신부가 친지 등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식은 이 성당 주임신부인 장훈씨 주례로 1시간30분 동안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됐다.

신랑은 반기문(68) 유엔 사무총장의 외아들 우현(38)씨. 신부는 대한변협 부회장을 지낸 유원석(59) 변호사의 장녀 제영(30)씨였다.

이들 결혼식은 국내에서 '도둑 결혼식'으로 화제가 됐다. 유엔 사무총장의 혼사(婚事)치고는 너무 조촐해 유엔에서도 '비밀 결혼식(secret wedding)'이라고들 했다. 화환도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보낸 것 세 개뿐이었다고 한다. 반 총장은 외교통상부장관 시절 두 딸도 조용히 결혼시켰다. 둘째 딸 현희씨는 2006년 인도 출신 청년과 결혼했다.

지난달 반 사무총장의 사돈 유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은 책상과 탁자, 의자밖에 없어 검소하다 못해 허름했다. 제영씨 결혼 얘기를 꺼내자 유 변호사는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뭘요. 특별하게 결혼하지도 않았어요. 결혼식이 '신고식'은 아니잖아요."

검소하게 '작은 결혼식'을 올린 이유에 대해 유 변호사는 "두 집안 부모가 서로 뜻이 잘 맞았고 아이들도 자기 힘으로 결혼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고 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연애 결혼해 제가 오히려 덕을 많이 봤지요."

사위 우현씨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뉴욕의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다. 육군 병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반기문 총장 부부와 아들 우현씨 - 2009년 뉴욕타임스에 ‘유엔의 수장이 아들을 비밀 결혼(secret wedding)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부부(왼쪽 사진)의 아들과 유원석 당시 대한변협 부회장의 큰딸이 뉴욕 맨해튼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오른쪽 사진은 반 총장의 전기 ‘세계를 가슴에 품어라’(김의식 지음·명진출판)에 실린 가족사진 일부다. 왼쪽 소년이 반 총장의 아들 우현씨다.

유 변호사의 딸 제영씨는 중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대 의대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제영씨는 친구 소개로 우현씨와 뉴욕에서 딱 한 시간 만난 뒤 한눈에 반해 사귀기 시작했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검소한 결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결혼 전에 혼주들끼리 터놓고 자주 얘기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첫 상견례 자리였는데 사돈(반 총장)이 '결혼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애들이 하는 거 아닙니까. 애들한테 결혼을 선물해 줍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혼수고 결혼식이고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게 됐죠."

유 변호사는 사위인 우현씨에게는 시계를, 부부를 위해선 은수저 세트를 선물했다고 했다.

"사돈이 대뜸 '하객은 얼마 정도 올 예정입니까? 저도 거기에 맞추겠습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흰 100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했죠. 그러니 반 총장이 흔쾌히 '그럼 저도 가까운 사람들만 부르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축의금도 받지 않기로 했죠."

그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고향에서 올라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에 다닐 때 부인과 결혼했다. "돈 한 푼 없는 처지였지만 신혼여행은 꼭 제 힘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울 용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속리산으로 신혼여행을 갔죠. 그땐 좌석제도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내 손 잡고 따라나선 아내가 정말 고맙죠."

유 변호사는 1남2녀를 뒀다. 나머지 두 자녀는 미혼이다. 그는 "회사원인 딸과 대학생인 아들도 검소하게 결혼시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