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가수 인생 10년의 훈장"이라며 웃었다. "목을 너무 많이 쓴 거죠. 성대에 굳은살이 생겨서 이래요. 노래할 때는 멀쩡한데 말할 때는 이렇게 바람 새는 소리가 나네요. 그래도 병원에서는 제 성대가 타고난 건강 체질이랍니다."
이렇게 씩씩한 그는 가수 장윤정(32)이다. 벌써 데뷔 10년이란다. 10월 6~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 콘서트를 갖는 그는 늘 그렇듯 밝고 무던했다. 2003년 '어머나'의 빅 히트 이후 전국 각지를 돌며 많을 때는 매일 10여회씩 행사 무대에 섰던 그는 '철인(鐵人)'처럼 10년을 살아왔다. 뻣뻣해진 성대,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는 그 결과. 안타까울 법도 하지만 그는 괘념치 않았다.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되잖아요. 성대에 힘을 주면 말할 때도 목소리가 괜찮게 나와요."
장윤정의 세종문화회관 입성은 그의 나이나, 경력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미자, 나훈아, 남진, 심수봉 등 '전설'급을 제외하면 트로트 장르에 대해서는 공연장 측 대관 심사가 유독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장윤정은 "괜한 기대를 하고 있으면 실망도 크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며 "막상 제가 세종문화회관에 서게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이제는 부담감에 짓눌린다"고 했다.
데뷔 10년차, 어느덧 중견이 된 장윤정은 첫 무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MBC '가요콘서트'에 처음 나와 '어머나'를 불렀죠. 중세의 여왕 같은 희한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설레긴 했지만 떨리지는 않았어요. 빨리 노래하고 싶다는, 신나는 느낌 같은 거였죠. 첫 무대 트라우마가 없어서 그런지 이후로도 공연을 앞두고 긴장해 본 적은 없습니다."
장윤정의 10년은 "외로웠다"고 한다.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 저와 함께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해왔다면 트로트 장르가 더욱 탄탄해졌을 것"이라며 "챔피언 벨트를 차고 있어도 누군가 도전을 하지 않으면 서서히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지는 법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어머나' 이후로도 장윤정은 '콩깍지' '짠짜라' '이따이따요' '꽃'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고 올해도 '초혼'으로 가요 차트 정상에 섰다. "비음(鼻音)이 적당히 들어간 고음이 제 음색의 매력이에요. 꾸준한 '숨쉬기 수련'을 통해 사람들 귀에 편안하게 들리는 노래를 할 수 있게 됐죠."
숨쉬기 수련? 정체가 궁금했다. "노래를 잘하려면 일단 폐활량이 커져야 하거든요. 짧은 시간에 몸통 이곳저곳에 공기를 꾸역꾸역 집어넣어야 노래하면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집에서 매일 30~40분씩 복식호흡 위주로 숨쉬기 훈련을 해요. 그러다 보면 옆구리, 등짝에도 공기가 들어간다니까요. 벌써 한 5년쯤 됐습니다."
장윤정은 두 달 전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콘서트 직전 그 소식을 들은 그는 "눈물을 삼키며 간신히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내가 뭘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가 몸도 제대로 가누시지 못한다는데 풍악을 울리고 있어야 한다니…. '관객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콘서트 끝나고 펑펑 울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눈물을 많이 쏟아본 적이 없었어요."
지난 10년, 장윤정은 꿋꿋했지만 가요계는 무섭게 변했다. 그는 "연말 시상식 때마다 아직 내 자리가 있어 다행스럽다고 느낀다"며 "작년에 만난 가수를 또 보게 되는 경우가 드문 게 현실"이라고 했다.
장윤정의 '트로트관'은 무엇일까? "갈수록 트로트가 자극적이고 쉬운 음악으로만 소비되는 것 같아 아쉬워요. 노래가 유쾌할지언정 사람이 우스워지면 안 되는데…. 그 경계에 서 있는 가수 분들도 좀 있거든요. 과거의 트로트는 클래식 전공자들이 진지하게 만들기도 했잖아요. 좀 더 깊이있는 트로트가 나와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