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고 만난 일본
김윤식 지음|그린비|807쪽|3만2000원
국문학자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흔히 동사 '쓰다'와 '읽다'의 주어로 불린다. 한국 지성사에서 유례없는 생산력의 상징인 150권의 방대한 저작 리스트와 매일 새벽 3시부터 시작되는 성실한 독서. 그런데 그의 새 책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은 이 저작 리스트에서 조금 생경한 빛깔을 띠고 있다. 실증적 연구나 엄정한 비평을 위주로 한 다른 책들과 달리 어떤 정념(情念)과 비감(悲感)까지도 여과 없이 드러낸 고백적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이 계열로는 2005년 펴낸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문학사상사)이 있었다. 역시 1인칭 주어로 시작했던 그 책이 고희를 맞은 원로 국문학자의 '문학적 자서전'이었다면, 이번 '내가…'는 자신의 고민과 연구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밝히는 '사상적 자서전'에 가깝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가 일본 근대문학 연구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목격했을 때 느꼈던 열패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패감을 극복해 한국 근대문학만의 정체성을 확보하겠다는 학자의 당위. 800쪽의 두꺼운 책을 덮었을 때 얻는 1차적 교훈은 한 원로 국문학자의 도저한 지적 편력과 사상적 여정의 비밀이겠지만, 그보다 더 아득한 것은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던 원로 학자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다.
'1970년은 내 학문적인 생애의 한 전환점이었다'라는 진술로 책은 시작한다. 그 해 서른다섯이었던 국립대학의 젊은 조교수 김윤식은 하버드옌칭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일본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외국인 연구원으로 1년을 체류한다. 연구 주제는 '한국근대문학에 미친 일본문학의 영향'. 정확히 10년이 흘러 1980년에도 도쿄대학 비교문화연구소 외국인 연구원으로 1년을 체류했다. 독한 마음 먹고 다시 도일한 마흔다섯 중견 교수의 연구 주제 역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일본에서 공부한 구한말 혹은 망국의 조선인 유학생들의 외면 조건과 내면 조건 연구. 이 두 번의 일본 체류를 소재로 그는 자신이 평생 동안 전력을 다한 읽기와 쓰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질곡이 그를 가로막았는지, 그리고 그가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다섯 산맥에 비유해 풀어나간다. 정작 '유학생 이광수들'이 읽고 만난 일본에서는 길을 잃었고, '인간'과 '문학'에 대해 본질적인 등반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는 고백이었다.
처음 세 산맥은 일본 근대 비평의 문을 연 걸출한 문예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1902~1983)와 에토 준(江��淳·1932~1999), 그리고 수사학의 권위자 모리 아리마사(森有正·1911~1976). 특히 지병으로 글쓰기가 불가능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에토 준과의 만남은 그의 학문과 삶에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보다 겨우 세 살 위였던 사실상의 동년배. "글쓰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에토 준은 "강아지를 길러보라"는 선문답을 한다. 깨우침은 "그 외 모든 것이 글쓰기"라는 것. 요컨대 강아지 기르는 시간만 빼면 먹는 것, 자는 것, 심지어 숨 쉬는 것까지 오직 글쓰기를 위해 존재한다는 삶의 태도다.
나머지 두 산맥은 그가 한국에 돌아와 직접 번역까지 했던 루스 베네딕트 여사의 '국화와 칼'과 역사학자 리처드 미첼의 '일제하의 사상통제'. 도쿄대학에서 함께 연구했던 서울대 서양사학과 오인석 교수와 의기투합해 번역한 '국화와 칼'이 최근까지 총 5판 84쇄를 넘게 찍으며 고전이 되었던 사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로서 범했던 오류들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또 일제강점기 사상 통제에 쓰인 법기술이나 행정기술을 정밀히 조사한 미첼의 저작을 통해 근대 지식인들의 사상 전향 문제를 짚는다. 결국은 이념이 우선이냐 삶이 먼저냐, 그리고 지식인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처음 만나 텍스트에 매혹되었을 때의 기억과 소련의 탱크가 조국의 시민을 깔아뭉개는데도 이 헝가리 공산주의자는 침묵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의 당혹과 실망을 쓸쓸하게 적고 있다.
스탕달은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살고 쓰고 사랑했다'. 그중 '사랑했다'를 빼면 자신의 삶이라고 고백하는 한 학자의 평생이 여기 있다. 그는 심지어 에토 준의 충고를 거스르고 강아지조차 기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