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 중 와인에 빠져

佛·이탈리아 와인기행 이어 이번엔 스페인 와인 책 내

가을에 맞는 스페인 와인?

'핀카 발피에드라' 추천

얼마짜리 마시느냐보다 어떤 얘기 풀어내느냐 중요

와인 공부 어렵지 않아

뒷맛·향·입김 등은 어떤지 나만의 생각 만들어가면 돼

와인에 대해 폼 재지 않고 말하는 김혁(50)이 좋았다. "타고난 미각? 없어도 돼요. 와인을 많이 마셔봐야 맛을 감별할 수 있다고요? 천만에요." '와인을 꼭 알아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저었다. "와인은 그저 좋은 얘깃거리라고 생각하면 돼요. 레이블 하나로 시작해 문화·예술 분야로 가지치기를 하면서 수다를 계속 떨 수 있게 해주는 매개?" 맛을 아는 데 대단한 공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와인 반 병 정도를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음미해보세요. 딱 두 종류만 놓고 비교 시음을 해봐도 좋아요. 가격이 비싼 와인과 싼 와인의 맛을 비교해본다거나 피노누아 혹은 카베르네 소비뇽 등 포도 품종이 서로 다른 와인을 마셔보면 맛이 선명하게 구별됩니다. 그런 다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기 언어로 노트에 적어봅니다. 뒷맛이 밍밍하다거나, 입감이 너무 세다거나, 향이 약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와인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이 만들어지죠."

김혁은 프랑스 와인 종사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다. 와인을 마실 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온도’라고 했다.“ 더운 지역 와인과 숙성 기간이 짧은 영(young) 와인은 시원하게 마시는 게 좋아요. 먼지처럼 잡다하게 퍼져 있는 맛을 일목요연하게 잡아주지요.”

와인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와인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달고 등장한 김혁은 와인에 대한 지적이고도 감성적인 글쓰기로 20년을 일관해온 사람이다. 지질학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유학 갔다 와인에 빠졌다. 2005년부터는 서울 신사동 포도플라자(와인 복합문화공간) 관장으로 와인 컨설팅에 열심을 내고 있지만 '본업'은 여전히 카메라 한 대 들고 유럽의 와인 산지를 누비며 글을 쓰는 일이다.

'프랑스 와인 기행'에 이어 '이탈리아 와인 기행'을 펴내더니 이번엔 '스페인 와인 기행'(알텐데북스)을 펴냈다. "직접 맛보지 않은 와인, 가보지 않은 와이너리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는 그는 종주국 프랑스에서 시작한 와인 기행의 폭을 스페인까지 넓혔다는 것이 꽤 자랑스러운 듯했다. "보르도 와인에 뒤지지 않는 맛과 향을 지녔으면서도 싸구려 취급을 당해온 스페인 와인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고 싶었어요.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의 진가 그리고 안달루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수백년을 이어온 셰리 와인은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이죠."

그가 스페인 와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에어프랑스에서 케이터링 매니저로 일할 때였다. "우연히 맛본 스페인 와인에서 부드럽고도 강건한 힘을 느꼈지요. 토착 품종인 템프라니요로 10년 이상 숙성된 스페인 와인은 아, 정말 좋아요. 거기다 가격까지 저렴하니 최고죠."

스페인 와인 기행을 위해 보르도에서 기차를 타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빌바오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보던 보데가(와이너리) 풍경들이 매우 낭만적이었다고 추억하는 김혁은 가을에 어울리는 와인으로 스페인산 핀카 발피에드라를 권했다. "맛도 좋지만 조약돌이 그려진 레이블을 좋아해요. 포도밭에서 돌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죠. 낮 동안 햇볕을 받아뒀다가 밤에 포도밭에 뿌려주고,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지게 해줘서 뿌리를 더 깊이 내리게 하고요."

그가 관장으로 있는 포도플라자의 와인바 '벵가(vinga)'는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수여하는 '레스토랑 와인리스트 어워드'를 3년 연속 수상했다. "미슐랭이 별점을 주듯 와인 스펙테이터는 와인 글라스의 숫자를 부여해요. 벵가는 첫해에 한 개, 지지난해와 지난해에는 글라스 두 개를 받았어요. 국내에선 유일하죠."

"와인이 한물간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혁은 "애호가는 여전하다"고 했다. 유럽으로 수출 길이 열린 '오미로제'처럼 국산 스파클링 와인이 탄생한 것도 와인 붐의 큰 성과로 쳤다. "스노비즘, 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이 문제죠. 얼마짜리 와인을 마시느냐보다는 와인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말입니다." 그에게 '소주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마실 순 있어요. 그런데 왜 마셔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깨끗하긴 하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