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2일 우리 정부가 전날 북측에 지원 물품으로 제시한 밀가루(1만t), 컵라면(300만개), 의약품을 "보잘것없는 얼마간의 물자"로 매도하며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을 우롱했다. 불순한 심보와 너절한 속통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맹비난했다. 품목과 수량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밀가루와 컵라면을 제시한 것은 신속한 지원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추가 지원도 가능하다'는 뜻을 전했는데도 걷어찬 걸 보면 원래부터 지원받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이어진 북한의 고강도 대남 비방·중상이 수해 지원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전혀 누그러들지 않은 점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남북 간에 지원 물품과 수량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중에도 "리명박 역적패당이 지×발광하고 있다", "쥐×× 무리들을 가차없이 죽탕쳐버리자" 등의 막말을 하며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저주했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작년 6월 이후 한국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뜻을 단 한 번도 꺾지 않은 북한이 대선을 3개월 앞둔 상황에서 식량을 조금 받자고 그 원칙을 무너뜨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우리의 수해 복구 지원 제의를 남남(南南) 갈등의 소재로 써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지원 물품과 수량, 지원 여부 자체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북한의 거부로 막을 내린 이번 수해 지원 논의 과정을 놓고 "정부가 북한의 말장난에 놀아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해 지원을 성사시켜 남북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정밀한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통일부는 지난 10일 "품목과 수량을 밝히라"고 요구한 북한의 대남 통지문이 도착한 이후 "일이 되는 쪽으로 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지원 성사 자체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정부는 북한에 지원 물품과 수량을 제시하기에 앞서 북한에 우리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방·중상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