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안태옥

최근 S백화점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1년 전 개장한 남성 편집매장 '맨 온 더 분'의 브랜드별 누적 판매액을 조사해 보니 'D&G' '장 폴 고티에' 같은 유명 해외 브랜드를 제치고 신인에 가까운 국내 디자이너의 브랜드가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디자이너 안태옥(31)의 '스펙테이터'가 그 '이변'의 주인공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높은 완성도에 비해 가격대가 합리적인 점, 밀리터리룩 등 최근 패션 트렌드를 세련되게 반영한 디자인 등이 인기의 요인"이라고 했다. 지난 7일 서울 한남동 쇼룸에서 안태옥을 만났다.

쇼룸에는 이달 초 발표회를 마친 가을·겨울 옷이 가득 걸려 있었다. 안태옥은 "이번에는 평소의 배 가까이 제품을 만드느라 자금이 부족했다"며 "고객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발표회를 마쳤다"고 했다. "일정 금액을 투자해 주면 그걸로 옷을 만들어서 투자금보다 약간 높은 가격의 제품으로 돌려주겠다고 했어요. 제품 사진이나 샘플을 미리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순전히 저를 믿고 투자해달라는 거였는데 44명이나 투자를 해줘서 저도 놀랐죠."

안태옥은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2001년 대학 3학년 때 대한민국패션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남성복 브랜드에서 5년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자신의 브랜드를 열었다.

그는 "처음에는 서울패션위크(서울시가 주최하는 패션쇼)에 지원했었다. 하지만 참가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심사에서 '쇼를 하기엔 옷이 너무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고 탈락했다"고 했다. "그때 진짜로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남들은 '무난하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디자인에 내 생각을 과하게 반영한다"고도 했다. 시각적으로 화려하다는 게 아니라 "최적의 원단과 봉제, 패턴 등을 철저하게 추구한다는 뜻"이란다.

안태옥이 디자인한 옷 중에는 주머니가 밖에 달린 카고팬츠(왼쪽)나 조종사복을 기반으로 한 재킷(오른쪽)처럼 군복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많다. 그는 7일 인터뷰에서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얼굴을 알려 옷을 팔고 싶지 않다”며 옷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맨 위 사진).

안태옥은 "연예인 이름을 빌려 단시간에 인기를 얻으면 싫증도 빨리 난다"며 "중요한 자리에서 스펙테이터를 입고 싶은데 구입할 형편이 안 된다고 메일을 보내온 고객에게 옷을 빌려준 적은 있지만 연예인이라고 해서 공짜로 옷을 빌려주진 않는다"고 했다. 지난겨울 출시한 옷의 일부 제품에서 바느질이 풀리는 '결함'이 발견됐을 땐 판매된 옷을 수거해 다시 바느질해주는 '리콜'을 하기도 했다.

완벽주의자의 모습이지만 정작 그는 "옷을 만들 땐 올바른 타협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100% 내가 원하는 대로 옷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게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했다. "스펙테이터로 확고한 나의 스타일을 먼저 만들고, 나중엔 색깔이 조금씩 다른 브랜드를 선보이고 싶어요. 여성복이나 아주 격식 있는 옷도 해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건 비밀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