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룡 부경대 교수·前 한국기상학회장

'태풍 볼라벤의 경로가 조작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어 '조작은 불가능'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문제는 기상청이 발표한 경로가 미국일본에서 발표한 경로와 다르다는 데서 시작됐다. 다른 이유가 ①기상청의 실수 때문? ②혹시 실수 속에 고의는 없는지? ③아니면 미국과 일본의 실수? 이 세 가지 중 어느 쪽인지 국민은 알고 싶은 것이다. 기상청은 ①이 아니고 ③이라고 고집하는 듯하고, 국민은 ②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 논쟁을 이해하려면 용어부터 정화해야겠다. 우선 '조작'이란 용어는 적합지 않다. 서해로 가야 할 태풍을 기상청이 황해도로 가게 했다면 '조작'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서해로 올라간 것을 황해도로 갔다고 설명한 것이 문제라면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조작은 불가능하다"는 기상청의 해명도 '왜곡은 불가능'이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고 보면 또 '불가능'이란 말도 적합하지 않음이 발견된다. 태풍 경로 발표는 기상청이 법으로 독점해 누구도 간섭 못한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다르다. 이번에도 미·일과 다른 경로를 찍어 독자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는가!

이어 기상청은 한국의 기상 분석 실력이 세계 10위권이라며 볼라벤 경로에 대해 전문가 회의를 갖자고 제안했다. 기상청이 실수한 것도 왜곡한 것도 아니며, 볼라벤 경로 발표가 틀리지 않았음을 주장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먼저 한국 기상청의 판단이 미국과 일본보다 정확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그 증거의 진위에 관해 전문가 검증을 받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매년 30개 이상의 태풍을 다루는 미·일보다 우리 기상청의 분석 능력이 더 우수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한국은 그중에서 몇 개, 그것도 우리나라 주변에서만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상청이 이번에 낙점한 경로는 기상청의 예보가 잘 맞았다고 고집하는 듯한 경로였다. 1987년 태풍 '셀마'때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계속 우기다가 2년여 지나서야 번복했다. 결국 셀마의 왜곡이나 볼라벤의 왜곡 의혹은 기상청이 예·경보를 독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볼라벤 경로의 왜곡 가능성을 실명으로 지적하는 기상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상청이 예·경보뿐만 아니라 금력·권력마저 독점해 아무도 대항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새 피어난 기관 독재의 독버섯이다. 모골이 송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