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기준으로 인재를 뽑겠다.' 최근 국내 대입 정책은 이 같은 기조 아래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가장 큰 골자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수험생의 혼란은 최소화하겠다'는 것. 이와 관련, 자녀를 각기 다른 고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6명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참가자 명단 (가나다 순, 괄호 안은 '연령+자녀 학교와 학년')
고재순(49·자율고 2년), 김경숙(46·외국어고 2년), 김형선(51·일반고 1년), 성명화(43·일반고 3년), 한민영(44·일반고 3년), 홍희정(48·자율고 2년).
◇입시 정책, 툭하면 바뀌어 야속
김형선(이하 '형'): 현행 대입 제도는 너무 복잡하다. 입학사정관 전형 관련 책을 본 적 있는데 전화번호부만큼 두껍더라. 전형 요강도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용어도 생소한 것 투성이다. 결국 (입시 문제는) 대치동 입시전문학원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입학사정관 전형이 잘 운영되는지도 의문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추천서 대필을 지시하는 게 예사인 상황에서 뭘 기대할 수 있겠나.
성명화(이하 '성'): 대입 제도가 매년 바뀌는 것도 문제다. 아이가 올해 고3인데 올 4월 발표된 전형 요강이 7월 되니 싹 바뀌더라. 그동안 준비했던 게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홍희정(이하 '홍'):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낸 엄마조차도 대입 문제에 부딪히자 '과외라도 시켜서 따라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더라. 제아무리 교육 신념이 확고해도 대입 정책에 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게 학부모의 현실이다.
김경숙(이하 '경'): 아이가 뚜렷한 목표를 갖고 A대학을 준비해도 실패 가능성을 생각해 (대안으로) B대학까지 생각하게 되는 게 엄마 마음이다. 자연히 두 대학 전형을 놓고 공부할 게 늘어난다. 그럴수록 엄마는 아이를 더 채근하게 된다.
홍: 매스컴에서 한쪽만 부각하는 면도 많다. 입학사정관 전형도 결국 학교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지극히 이상적인 합격 사례를 골라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식으로 미화한다.
형: (입학사정관 전형은 진로를 일찍 정할수록 유리하다는데) 우리 아이는 체육을 좋아한다. 학원 줄이고 축구 할 시간을 주니 정말 행복해하면서 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그 정도 이유로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할 순 없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공략하려면 수상 실적도 있어야 하지 않나. 사회체육 계열 진학을 염두에 두고 대치동 체대입시학원에서 상담했는데 '최소 3등급 이내 내신을 달성한 후 다시 오라'고 하더라.
◇'체육=버리는 과목' 풍토 아쉽다
고재순(이하 '고'): 입시 정책을 바꾸려면 교사나 학부모 의견부터 수렴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다. 교육 정책 입안자들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자녀를 키워본 사람인지 궁금하다.
홍: 고1 학부모가 대입설명회장에 가면 선배 학부모도, 강사도 "아이가 고3 되면 (입시 정책이) 또 바뀔 거니까 벌써 들을 필요 없다"고 한다. 실제로 정책이 하도 자주 바뀌어 3년 전 첫째를 대학에 보낼 때 쌓았던 정보나 노하우를 지금 둘째에게 적용할 수 없다. 적어도 5년, 아니 3년 만이라도 한 정책을 유지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 정책을 시작할 땐 최소 3년 전 공시해 준비할 수 있게 해 달라.
한민영(이하 '한'):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리는 과목도 있다. 자기들끼린 '밤에 좀 못 자도 학교에서 (버리는 과목 시간에) 자면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 안타깝다.
형: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체육 과목 비중을 늘려야 한다. 학교 체육 시간엔 선생님이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며 자리를 비우곤 한다더라. 체육은 그맘때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과목인데도 시수 자체가 적고, 그나마 제대로 운영되지도 않는다.
경: 둘째 아이를 외국어고에 보냈다. 첫째를 일반고에 보냈는데 공부를 거의 안 하더라. 스스로 공부하는 편이 아닌 데다 학교에서도 관리해주지 않으니 공부에서 더더욱 멀어졌다. 외국어고는 학업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만 비교과 활동이 다양해 더 좋았다.
홍: 요즘 일반고에선 시험 성적에 따라 우수반을 편성, 집중 관리하는 게 유행이 됐다. 나머지 학생에겐 관심조차 없다. (정말 사교육이 줄어들려면) 이런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꼴찌에게도 '언젠간 나도 1등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교육이 아쉽다.
◇아이 홀로서기, 엄마 하기 나름
한: 사실 정책에 휘둘리면서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건 우리 엄마들이란 생각도 든다. '좋은 대학 보내기'보다 중요한 게 '아이 자신의 행복'이란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다닐 땐 학원 참 많이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학원 가는 아이 표정이 너무 우울하더라. 그날 이후 모든 걸 아이 생각에 맞췄다. 내 욕심 버리기가 너무 어려워 부모 교육까지 받아가며 노력했다. 고교생이 된 아이가 언젠가 그러더라. '초등학생 땐 집에서 말할 상대가 없어 어항 속 물고기와 얘기했다'고, '학년이 올라가면 더 많은 학원에 다녀야 할까 봐 나이 먹는 게 싫었다'고. 그 얘기 듣고 반성 많이 했다.
경: 나도 잘못한 게 많다. 첫째 아이가 수학을 참 좋아했는데 민족사관고에 보낼 욕심으로 중1 때 학원에 보내 고교 3년 과정을 마치게 했다. 그랬더니 중3 때 수학에 질려버리더라. 공부에 손을 놓고 한동안 판타지소설과 게임에 빠져 살았다. 고2 때까지 공부 문제로 아이와 매일 싸우다가 내가 태도를 고쳤다. '엄마도 딱 네 나이 때 하이틴로맨스 소설 정말 좋아했다'며 화법을 바꾸자 아이도 달라졌다.
홍: 엄마들은 불안한 맘에 자신이 아이를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엄마가 손을 뗐을 때 자기 길을 더 잘 찾아가는 것 같다. 첫째 아이 키우면서 사교육이 별 효과 없다는 걸 알게 돼 둘째 아이는 사교육 개념조차 없는 시골 기숙학교에 보냈다. 시행착오도 겪지만 그게 오히려 아이 공부엔 도움이 된다.
고: 대입 정책뿐 아니라 엄마도 달라져야 아이가 행복해진다. 부모가 노력하는 만큼 아이도 바른길로 돌아온다고 믿고 실천해야 아이와 엄마 모두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