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광주시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 광장. 14개의 탁구대에서 물음표가 그려진 흰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탁구를 시작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 탁구 경기는 아르헨티나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51)의 작품 '무제 2012'. 작가는 네트로 이분(二分)된 탁구대, 전쟁을 연상시키는 탁구의 '공격과 수비' 속성을 통해 분단된 남북(南北)의 현실을 짚는다.
'2012 광주 비엔날레'가 6일 개막했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이 행사에는 전 세계 42개국 92명의 작가가 참여, 11월 11일까지 15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예술로 승화된 광주의 '역사성'
5·18 비극을 담은 광주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상기시키는 것이 이번 광주 비엔날레의 목표 중 하나. 서도호(50)는 광주 구도심의 오래된 주택, 재래시장의 상점, 옛 가톨릭대학의 기숙사 공간 등 '잊힌 공간'의 낙서와 흔적에 주목했다. 그는 낙서 위에 종이를 대고 색연필·목탄으로 문질러서 탁본을 떴다. 이를 '탁본 프로젝트'라는 작품으로 전시해 공간의 역사성을 상기시켰다.
한국계 미국 작가 마이클 주(46)는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쓰는 투명한 방패 108개로 지붕을 만들었다. 그 아래 항아리·대야 등 다양한 일상용품을 점토로 만들어 전시했다. '공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다룬 이 작품, '분리불가'는 5·18을 비롯한 전 세계 시민운동을 시사한다.
◇사찰·시장·극장도 전시장으로 활용
사찰, 재래시장, 극장 등 광주 곳곳의 다양한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 독일작가 볼프강 라이프(62)는 비엔날레 본전시장에서 자동차로 20여분 떨어진 무각사(無覺寺) 문화관 2층 바닥에 절에서 재배한 쌀과 헤이즐넛 꽃가루를 섞어 자그마한 봉우리 100여개를 만든 작품 '망망대해'를 선보였다. '생명'을 뜻하는 쌀과 꽃가루로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를 탐구했다.
광주극장과 대인시장에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옛날 광주 극장주가 기거했던 사택에선 김범(49)의 영상작품 '노란 비명'이 상영됐다. 대인시장에선 서도호의 '탁본 프로젝트' 관객 참여 공간 등이 마련됐다.
◇공동감독제는 실패?
'라운드 테이블'을 주제로 삼은 이번 광주비엔날레엔 처음으로 '공동예술감독제'가 도입됐다. 김선정(47) 사무소 대표, 마미 카타오카(46) 모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등 한국·일본·중국·인도네시아·아랍·인도 등 6명의 공동감독이 제시한 6개의 주제로 전시를 꾸몄다. '다양성'을 모색했지만, 전시가 유기적이지 않고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비판이 더 많았다. 본전시장에선 감독 6명의 기획이 뒤섞여 각각의 주제를 간파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감독별로 각각 전시장을 주는 편이 나을 뻔 했다. '비빔밥'을 지향했으나 '잡탕'이 되고 만 격. 전시를 관람한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큐레이터 6명의 수준이 너무 다르고, 주제가 일관성이 없다.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쉽다"고 평했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한마디로 '실패작'이다. '비엔날레'란 동시대의 시급한 의제를 다뤄야 하는데 그런 문제의식이 안 보인다. 공동 감독제가 전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062) 608-4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