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조야. 지금 네 편지를 받어읽었다. 너무 기쁘고 반가와서 소설도 그만두고 네게 편지를 쓴다. 성적표 벳겨보낸 것도 고맙다. 잘한 성적이 아니지만 나는 기쁘기 짝이 없다. 대수·기하·물리학 점수가 떠러진 편이드구나. 엄마도 그런 것을 잘 못했는데, 네가 엄마의 머리를 닮았는가부다."
1952년 소설가 최정희(1906~ 1990)는 아들 익조의 편지를 받고 얼른 답장을 보냈다. 익조는 첫 남편 김유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그러나 남편은 혼인신고도 못 한 채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그녀는 아들을 시댁에 보내고 떨어져 살아야 했다. 모자(母子)는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리움과 애틋함을 편지로 달래야 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이 오는 14일부터 여는 '글을 담는 반짇고리'는 여성 문인들의 손때 묻은 물품을 통해 문학세계와 삶을 들여다보는 전시다. 인습과 편견의 족쇄를 풀어헤쳤으나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한 나혜석부터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방대한 소설로 꿴 박경리까지, 19세기 말에서 1920년대에 태어난 여성 문인 13인이 주인공이다.
모윤숙이 앉아 글을 쓰던 책상, 아직도 바늘에 실이 꿰어진 한무숙의 '싱거 미싱', 박경리가 쓰던 나무재떨이와 찻잔에선 살 냄새가 물씬 풍긴다. 최정희의 편지와 김남조가 1957년에 쓴 '첫사랑' 육필 원고 전문, 노천명의 '사슴'의 일부를 서예가 김단희가 쓴 액자 등 유품들도 전시된다. 생전의 모습을 찍은 다양한 사진 자료, 초판본 저서들과 절판된 작품집들도 곁들였다. 강인숙 관장은 "모윤숙 선생의 딸이 캐나다에서 한복까지 보내줘 귀한 새 자료를 많이 수집할 수 있었고, 송영순 교수의 애장품이 보태져서 자료가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이 작가들의 문학세계 이해를 돕기 위한 강연회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오는 15일에는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가 '한국 여성 문학의 방향'을, 22일에는 국문학자 송영순이 '모윤숙의 문학과 삶'을, 10월 6일에는 소설가 서영은이 '여성의 삶, 글쓰기'를, 10월 13일에는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나의 어머니, 박경리'를, 10월 20일에는 서정자 초당대 교수가 '나혜석이라는 창窓'을, 10월 27일에는 김호기 한무숙문학관 관장이 '한무숙의 생애와 문학'을, 11월 3일에는 문학평론가 김현자가 '자의식의 심연과 감각의 변주'를 강연한다. 월요일 휴관. 전시는 11월 3일까지. (02)379-3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