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잇달아 돈을 풀 채비에 나서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통화전쟁이 재점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통화전쟁은 지난 2010년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이 쓴 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차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달러화가 대규모로 풀리자 각국 정부가 자국 통화절상을 막기 위해 세금 부과 등 갖가지 방어조치에 나선 것을 빗댔다.

이번에 미국과 유럽의 추가 양적완화 전망이 커지면서 통화전쟁 우려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는 신흥국들은 방어 태세에 나서고 있다. 유동성이 넘치면서 투기성자금(핫머니)으로 금융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 亞, 치솟는 자산 가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는 물론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리우츠 코왈츠키 크레디 아그리콜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FRB나 유럽중앙은행(ECB)이 부양책에 나선다면 위험자산 선호 심리는 더욱 심해지고 아시아로 더 많은 돈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 가격 급등 현상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3개월 사이 원화 가치가 달러화 대비 3.7% 상승했고, 7월말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한국 국채 및 채권은 79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떠오르는 신흥국인 필리핀의 페소화 가치도 3.1% 올랐고, 7월 중 외국인이 보유한 필리핀 주식과 채권은 9억6300만달러로, 올해 상반기 총합과 비슷했다.

마켓워치는 29일(현지시각) '3차 양적완화로 환율전쟁 암운'이라는 기고에서 "독립적인 경제체제가 존중받는 국제 사회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점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책임 범위가 다른 중앙은행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금은 어디로든 가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견고한 한국·칠레·호주·뉴질랜드 등이 새로운 투자국으로 부상하며 해당국 통화가 절상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런 현상이 현실화할 경우 어느 정부도 외환시장 개입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 각국 환율방어 태세

자국 통화절상을 막기 위한 신흥국의 방어 노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 이어졌다. 브라질은 29일에도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내린 7.5%로 조정했다. 브라질이 지난해 이후 내린 금리는 총 5% 포인트에 달한다. 통화전쟁의 선두주자에 섰던 브라질은 핫머니 유입을 막기 위해 외국인 채권투자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취해왔다. 마켓워치는 "브라질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인도네시아도 핫머니 유입을 막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엔고(円高)로 애를 먹은 일본은 거듭 외환시장 개입을 시사했다. 나카오 다케히코 일본 재무차관은 29일 영국 런던에서 회견을 갖고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지나치게 올랐다"며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일본 경제는 그렇게 탄탄하지 않고, 필요할 경우에는 외환시장에 매우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유럽 재정위기로 갈곳 잃은 자금이 쏠리는 노르웨이도 다르지 않다. 블룸버그에 따르며 얀 크빅스타트 노르웨이 중앙은행 부총재는 노르웨이 크로네화 강세를 언급하며 "중앙은행을 시험하지 말라"며 투기 세력에 날을 세웠다. 크로네화는 달러화 대비 2.4%, 유로화 대비 5.7% 각각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