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작지만 강한 나라로 입지를 굳힌 네덜란드가 최상위 신용등급을 일컫는 ‘트리플 A’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독일과 함께 유로존에서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Aaa’ 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 지표가 점점 악화되는데다 오는 9월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 불안이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선거 결과에 따라 네덜란드의 긴축안 시행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향후 등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GDP보다 많은 부동산 대출

네덜란드 경제 전망은 전반적으로 침울하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 성장률을 0.2%에서 마이너스 0.6%로 낮춰 잡았고, 내년 성장률도 0.6%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올해 3분기부터 내수와 수출이 동반 감소하며 마이너스 성장이 점쳐진다. 네덜란드는 유로존 내에서 소규모 개방경제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부동산 시장 침체에 대한 우려도 부쩍 커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네덜란드 부동산 가격은 1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스페인이 30%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과거 늘어난 부동산 대출은 집값이 급락하며, 상환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네덜란드의 1인당 부동산 대출 규모가 유럽연합(EU) 내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네덜란드계 ING은행은 “내년이면 네덜란드 가구 4곳 중 1곳의 부동산 대출이 실제 부동산 가치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5년 1400억유로 수준이었던 네덜란드 부동산 대출은 작년 6400억유로로, 네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46%에서 105%로 늘어난 것으로 부동산 대출이 네덜란드 전체 경제를 뛰어넘은 것이다.

◆ "긴축은 없다" 사회당 득세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9월 12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점이다. 네덜란드는 지난 4월 총선을 치렀지만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로 맞추라는 EU의 신(新)재정협약에 야당들이 반대하며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당시 마르크 뤼테 총리는 긴축예산안 합의 불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9월 조기 총선을 열기로 했다.

올해 네덜란드의 GDP 대비 적자 비율은 4.2%로 긴축이 불가피하지만 선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親) EU 정서가 강한 집권 자유민주당과 신재정협약에 반대하는 극좌 사회당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사회당이 약간 앞선다는 분석이 많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반(反) 긴축 정서가 힘을 얻으면서다. 현지 유력 여론조사기관인 데 혼데에 따르면 사회당은 36석, 자유민주당은 32석을 얻을 것으로 조사됐다.

에밀레 뢰머 사회당 대표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네덜란드가 재정협약 위반으로 벌금을 내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유로존 붕괴에 찬성하지 않지만 특정 국가들을 일부 기관이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회원국간 격차만 벌이는 일”이라고 자유민주당과 입장차를 보였다.

◆ "네덜란드만 나쁘진 않다"

일부에선 선거라는 변수만 제외하고 네덜란드 경제가 특별히 나쁠 것 없다는 주장도 내놨다. 지난 6월 미국계 신평사인 피치는 네덜란드 등급을 'AAA', 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외국인의 투자가 견고하고, 작년 유로존 구제금융 기여도도 낮아 재정위기에 대한 탄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라보은행의 한스 스테겐만 애널리스트는 CNBC에 “선거 결과 어떤 연립정부가 구성되든 신용등급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독일·핀란드·프랑스 등 다른 최상위 등급의 국가들이 강등되거나 유럽 재정위기가 더욱 심화할 경우에는 네덜란드 등급도 강등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라는 “선거 후 내각 구성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뤄질지가 관건”이라며 “그나마 친EU 성향의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4월 선거 후 내각 구성까지 걸린 시간은 125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