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령씨는 경기여고·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했다. 1982년 기업인 2세와 결혼했다가 얼마 안 돼 이혼하고 미국에 머물기도 했다. 박 후보는 자서전에서 근령씨에 대해 "나보다 창조적인 아이였고, 그만큼 자유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했다.

박 후보와 근령씨 간에는 90년대부터 문제가 생겼다. 1990년 근령씨를 지지하는 '숭모회'는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 퇴진 운동을 벌였으며 결국 박 후보가 1992년 이사장직을 근령씨에게 넘겨주었다. 당시 지만씨도 근령씨 편에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령씨는 2004년 교육청으로부터 이사장 해임결정(부실 운영 등)을 받았고, 오랜 소송 끝에 패소해 2008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때는 지만씨가 근령씨와 대립했다. 육영재단 자산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 부지(13만2000㎡)만 3조~4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영재단이 소유한 서울 광진구 어린이회관은 13만㎡ 부지 등으로 자산 가격이 3조~4조대로 추정된다.

그 뒤로도 근령씨는 언니와 대립하고 있다. 근령씨는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충북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친박 학살' 논란으로 당의 지원 요청을 거부하던 박 후보와 달리 당을 지원했다. 근령씨는 14세 연하의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와 2008년 10월 결혼했다. 박 후보는 이 결혼식에도 불참했고, 당시 인터넷 미니홈피에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썼다.

신씨는 2009년 5월 박 후보의 미니홈피에 '박지만이 박근혜의 묵인 아래 박근령으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신동욱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는 글을 다른 사람 명의로 40여 차례 올렸다가 박 후보의 수사 의뢰로 구속돼 징역형을 살고 있다. 근령씨는 지난 4·11 총선에선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 후보로 육영수 여사의 고향(옥천)인 충북 보은·옥천·영동에 출마하려다가 선거 직전 포기했다.

근령씨는 지난 4월 TV조선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로서 박근혜에 대해 "장점부터 말하자면 원칙과 소신 그런 것은 확실히 있는 분"이라며 "그런데 '독불장군은 없다'는 얘기가 있듯이 항상 혼자 일을 할 수가 없지 않으냐. (국가를 위한) 그런 일을 관철하고 구현하려면 역시 옆에서 보필하는 분들이 박 대표의 마음을 좀 더 깊이 헤아려서 참되게 보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