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략실장·전 북한 외교관

지난 13일 시작된 북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방중이 5박 6일 만인 지난 18일 끝났다. 장성택의 방중은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수행원 수만 20~30명(50여명 설도 있음)이었다. 필자는 10여년을 북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대표단 일원으로 외국을 방문한 적이 많다. 그중 가장 컸던 대표단 규모가 10여명이었다. 일개 당 부장이 수십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외국을 방문하는 것은 김정일 시절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김정일처럼 선발대가 미리 가고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베이징 현지에서 그를 영접한 것은 파격을 넘어 '오버'에 가깝다.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을 숙소로 이용한 것도 마찬가지다.

장성택이 국가수반급 규모로 대표단을 꾸려 방중했는데도 이런 행동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큼 그의 위세는 대단해 보인다. 중국도 그를 수반급으로 극진하게 대접했다. 중국 공산당 서열 1·3위인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도 그를 만나줬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북한은 황금평과 나선특구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중국이 투자 약속만 해놓고 실제 투자에선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성택이 중국행을 택한 것은 중국의 '통 큰 투자'를 얻어내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장성택은 최근 시행에 들어간 '6·28 경제관리개선조치'를 과거 중국식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인 양 설명하면서 중국 정부가 특구 개발에 직접 나서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전직 북한 외교관의 직감이다.

중국은 '북한의 실세'이자 지중파(知中派)인 장성택이 직접 달려와 요청을 하니 양국 입장의 중간 지점 정도에서 합의해준 모양새다.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입장 차로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도 이번 장성택의 방문으로 해빙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노회한 장성택이 아니었으면 거두기 어려웠을 성과다.

하지만 장성택 방중의 성과는 여기까지다. 지난 14일 양측이 합의한 황금평·위화도지구와 나선지구 개발 합의문을 보면 '정부 인도, 기업 위주, 시장원리'라는 원칙이 눈에 들어온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북한이 시장경제 도입에 합의했다'고 해석했지만 이는 무지의 소치다. 이 말은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도록 인도는 하겠으나 어디까지나 기업들이 주인이 돼 투자해야 하며 이윤이 나오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즉, 중국이 강조한 '시장원리'에는 '대북 투자는 기업들이 이윤을 따져 할 일이지, 중앙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북중 경협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그림이 엿보인다.

김정은김정일이 측근 정치를 하면서 무시했던 노동당 정치국, 당대표자회 등 당 시스템을 상당 부분 복원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자력갱생식 경제의 현실을 인정한 '6·28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투자가 절실하다. 회복 불능 상태인 북한 경제 자체의 힘으로는 어렵다. 실력자 장성택의 방중도 이런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6·28 조치' 등 현재까지 북한이 보인 행태들에선 실패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김씨 가문의 사회주의'를 더 강화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듯한 인상이다. 본질적인 변화보다는 임시변통적이고 지엽적인 조치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경제를 회복하고 체제를 유지하고 싶다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비핵화를 우선 실현하고 본질적인 개혁·개방을 결심하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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