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정부가 경제 관련 정책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내용 중에는 주로 재벌의 순환출자 규제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 민주화 방안과 대기업 및 부자 증세에 초점을 맞춘 세제 개편안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런 발표들을 보면서 과연 정부의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이 올바른 것인지, 정치권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듯이 앞으로 수년간은 세계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어 한국이 과거와 같이 수출에 의존한 성장을 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3%의 성장률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투자와 민간소비 등 내수에 의존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정책들은 대부분 내수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만일 경제 민주화 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대기업들은 당분간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하여 투자보다는 자기 지분 확보에 더 많은 자금과 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과거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경영권 방어가 대기업들에 얼마나 민감한 현안인가를 우리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몰두할 때는 대규모 장기투자에 대한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 민주화 법안은 결국 상당 기간 국내 투자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의 세제 개편안 역시 내수 살리기에 역행할 소지가 크다. 현재와 같이 가계부채가 누적되어 서민층 및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크게 저하된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 있는 부유층의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개편된 세제는 오히려 부유층의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것이다. 또한 대기업에 대한 증세로 가닥이 잡힌 법인세 개편안 역시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꺾는 부정적 효과가 나올 것이다.

세제 개편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와 같은 개편을 통해서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세수가 약 1.6조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정부가 1.6조원을 사용해서 얼마나 내수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수 살리기의 효과가 별로 크지 않으면서 공연히 투자와 소비심리만 위축시킬 수 있는 세제 개편안을 추진하기보다는 차라리 대기업과 부유층의 자발적인 투자와 소비를 유인하는 것이 더 좋은 방책이 아닐까 한다.

일부 위정자들은 경제 민주화와 부자 증세가 현재와 같이 양극화가 심한 한국 사회의 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은 당분간 성장을 희생해서라도 경제 민주화와 부자 증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핵심은 중소기업의 생산성 증가이지 대기업 때리기가 아니다. 또한 부자 증세가 분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그 근거가 희박하다. 소득분배의 개선은 증세도 중요하지만 증세로 걷힌 세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와 부자 증세의 논리는 성장보다는 분배를 개선하자는 논리가 아니다. 이보다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도 대선 및 총선과 같은 정치의 계절에는 항상 정치 논리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의 현실은 이 같은 여유를 부리기에는 너무도 냉혹하다. 현재 한국 경제는 과거와 같이 수출에 의존하거나 정부의 재정지출에 의존한 성장을 도모하기가 당분간 힘든 상황이다. 우리 위정자들이 당장 대선에서 어떤 정책이 더 많은 표를 얻을 것인가만을 고민하지 말고, 보다 냉정하게 한국 경제의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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