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張成澤)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이 방중 나흘 만인 17일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회동했다. 그가 사실상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의 대리인이라는 점에서 중국 최고지도부와 잇달아 '준(準)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첫 양국 최고위층 간 접촉이다. 전문가들은 김정일 사망과 중국의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냉각됐던 양국 관계가 이번 회동으로 회복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김정은의 첫 방중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 분야에서는 북측이 중국에 과감한 경제 지원을 요청한 반면, 중국은 먼저 개혁·개방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등 이견을 노출했다.

◇장성택, 관계 회복 특사

후 주석은 이날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회담에서 "중국 당과 정부는 시종 고도의 전략적, 장기적 시각에서 중조(中朝·중국과 북한) 관계를 보고 있다"면서 "고위층 교류를 지속하고, 국제문제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면서 양국 우호 협력을 한 수준 높여나가자"고 말했다. 장 부장은 김정은의 안부를 전하면서 "양국 원로 지도자들이 손수 만들고 키워온 양국 우호관계는 시대의 풍우(風雨)와 시험을 모두 견뎌냈다. 세대를 이어 깨지지 않도록 양국 우의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을 방문 중인 장성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왼쪽)이 17일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주석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김정일 사후 지난 8개월간 양국 관계는 고위층 간 교류가 거의 끊어졌다. 북한에서 김영일 노동당 국제부장(4월)과 리명수 인민보안부장(7월), 중국에서 푸잉(傅瑩) 외교부 부부장(2월) 정도가 상호 방문했지만 냉랭한 관계가 이어졌다. 중국이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와 3차 핵실험 계획에 정면으로 반대한 것이 주 요인이었다. 이런 관계가 풀릴 조짐을 보인 것은 이달 초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과 김정은 면담이었다. 장 부장은 왕 부장이 귀국한 지 열흘 만인 지난 13일 전격적으로 중국을 답방했다.

◇경제 개혁 속도엔 이견

이번 회담에서 장 부장은 경제 발전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를 전달하면서, 대규모 개발 차관을 포함한 경제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측은 이날 회담에서 좀 더 과감한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쪽에 더 무게를 실었다.

원자바오 총리는 장 부장에게 법규 정비, 지방정부 간 협조 강화, 시장 시스템 활성화, 기업 투자 유치 노력 확대, 세관 서비스 개선 등 세부 분야를 짚어가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최고위급 회담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후 주석 역시 "쌍방이 각자의 우세한 점을 충분히 활용해 새로운 협력 방식을 찾아나가자"며 우회적으로 개혁·개방 노력을 촉구했다.

중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이 명확한 개혁·개방 일정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규모 경제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