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한중 갈등이 고조된 2010년 6월,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중국이라는 급행열차에 올라타고자 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이 주장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정서에 영합하는 발언'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논리에 동조하는 중국 교수나 관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중국에서 적잖은 과실(果實)을 챙기는 한국이 한미동맹 강화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20년간 한국 경제의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이 우리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은 지 오래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 대중수출의 70% 이상이 중간재이다. 우리가 수출한 중간재를 중국에서 최종적으로 가공해 유럽·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로 수출하는 수직분업 구조이다. 우리가 이 구조에서 누리는 이익 못지않게, 중국 역시 가격 대비 품질 좋은 한국산 중간재의 혜택을 향유하고 있다. 누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구조가 아니라 한중 양국이 동업자로서 협력해 이익을 나눠 갖는 시스템인 것이다.
우리 기업은 수교 직후부터 중국 각 지역으로 발 빠르게 진출했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액수가 500억달러에 육박하고, 3만여개에 이르는 우리 기업이 중국 전역에서 400만명 이상의 중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중국 내 우리 공장들은 한발 앞선 기술과 경영 노하우로 중국 제조업 전반의 수준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지금도 우리 기업은 중국이 가장 손쉽게 참고할 수 있는 벤치마킹 대상이다. 물론 우리 기업 역시 중국 정부가 제공한 각종 혜택과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국제 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었다.
양국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됐다고 해서, 국가의 생존이 걸린 국제정치·안보 전략의 선택 문제까지 제약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10년 이상 공을 들여 지난 2010년 아세안(ASEAN)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지만, 국익이 걸린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동남아 국가들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는 것에서도 이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더욱이 한미동맹 강화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주장은 냉전시대의 논리에 갇힌 시각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2000년대 후반까지 연간 10~14%에 이르는 폭발적인 고도성장 시대를 구가했다. 2010년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처럼 세계 무역 질서 편입의 혜택을 한껏 누린 중국이 지금 덩치가 커졌다고 경제 분야에서 편협한 민족주의를 드러낸다면 개혁·개방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유력 정치인이나 일부 기업인 중에도 이런 인식을 갖고 스스로 '경제볼모론'에 빠져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친 저자세도 중국의 오인(誤認)을 부를 수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로 대등한 협력 파트너의 길을 걸어가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