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파를 견제하며 출세를 향해 달리는 기업 간부(SBS '샐러리맨 초한지'의 장량), 실수한 아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냉혹한 기업가(SBS '패션왕'의 정만호), 의술보다는 술수에 몰두하는 어의(MBC '닥터 진'의 유홍필)…. 올해 방송된 TV 드라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조연들이다.

방송 분량은 적을지 몰라도 강렬한 인상의 존재감만은 확실했다. 이 캐릭터들을 연기한 배우는 탤런트 김일우(49). 친근하고 익숙한 얼굴과 시청자 눈을 잡아끄는 흡인력을 광고주들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요즘 캔커피, 신용카드 등 TV 광고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닥터 진' 촬영을 마친 김일우를 경기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일우의 이름 앞에 자주 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명품 조연'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명품 조연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연이라서가 아니라 물건에 비유하는 것 같아서"라고 한다. "가방도 아니고…(웃음). 축구에서 골을 안 넣는다고 해서 수비수가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드라마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역할은 없다고 생각해요."

최근 경기 고양시의 카페에서 만난 김일우는“연기는 쌓인 것이 우러나오는 것”이라며“앞으로 내 안에 무엇이 쌓여 어떤 연기가 나올지 나도 궁금하다”고 했다.

코믹과 악역을 넘나드는 김일우는 연기 폭이 넓은 배우다. 최근 드라마의 '독한' 역할과 상반되는 코믹한 모습을 CF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주려고 한다"며 "상대방의 특성에 맞게 적절한 기술을 골라 구사하는 격투기 선수처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습 중 연기하는 캐릭터에 꼭 맞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연기는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기를 시작할 땐 선하고 바른 배역이 많았고, 그 뒤엔 한동안 강한 캐릭터들이 계속 들어왔어요. 또 언젠가부터는 코믹한 역할이 이어졌죠. 지금 맡는 배역은 그런 역할들이 조금씩 섞인 것 같아요. 연기는 갑자기 뭔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쌓아 온 경험과 취향, 품성 같은 게 다 우러나온 결과물이죠."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재수를 하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보니 음악, 그림, 요리 등 모두 창작과 관련된 일이었다"고 했다. "이런 분야가 종합적으로 필요한 영화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갔다. 영화는 물론 사진, 무용 등에 도전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김일우는 "지금도 계속 도전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닥터 진 촬영을 마친 그의 다음 도전 분야는 코미디다. "곧 방송될 심야 시간대 TV 프로에서 10여분짜리 콩트를 맡게 됐어요. 제목에 제 이름이 들어 있어 더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되죠. 성공할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알겠지만, 실패 위험이 있다는 건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는 거겠죠." 그는 "기회가 된다면 영화에도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TV는 캐릭터 성격을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캐릭터를 극대화하고 싶은 갈증을 풀기엔 영화가 더 적합할 수 있죠. 실패요? 별로 두렵지 않아요. 어차피 전 잃을 게 별로 없거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