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금융회사의 부정행위가 잇따라 터져 나온 배경에 금융산업을 둘러싼 런던과 뉴욕의 주도권 싸움이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바클레이스의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단기 자금 금리) 조작 스캔들과 HSBC의 북한 및 멕시코 마약조직과의 거래에 이어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이란과의 불법 금융거래 사건이 불거져 영국 금융가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 영국 금융회사들의 치부(恥部)는 자국(自國)이 아닌 미국 당국에 의해 발가벗겨졌다.
미국 뉴욕주 금융감독국은 지난 6일 SC은행이 이란과 2500억달러(약 282조원)에 이르는 불법 거래를 했다고 발표하며 SC의 뉴욕주 은행 면허를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SC은행에 대해 '불량배 금융기관(rogue institution)'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판했다.
영국 금융권과 정계에서 즉시 "정치적으로 의도된 수사"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국 노동당의 존 만 의원은 "기업들을 더 시티(런던 금융가)에서 월스트리트(뉴욕 금융가)로 옮기려는 의도를 가진 반(反)영국 정서가 미국 정치인과 당국 사이에 퍼져 있다"며 "이건 분명한 주도권 싸움이며 판돈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SC은행도 "미국이 발표한 2500억달러 중 99.9%는 적법한 거래였으며, 극히 적은 불법 액수는 실무자의 실수 때문"이라고 반박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8일 보도했다. 반면 미국 백악관의 제이 카니 대변인은 "(이란) 제재를 어겼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영국의 반발을 일축했다.
런던과 뉴욕은 세계 최고 금융도시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19세기에는 광대한 식민지를 뒀던 영국의 런던이 거의 유일한 국제금융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뉴욕은 JP모건과 메릴린치 등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최고 금융도시의 아성을 구축했다. 한동안 주춤하던 런던 금융가는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까다로운 금융규제를 피해 런던으로 옮기는 금융기관이 늘며 다시 활기를 찾았다. 여기에다가 최근 급성장한 아시아의 기업·금융회사들도 뉴욕보다 시간대가 비교적 가까운 런던을 금융허브로 선호했다. 그 결과 런던은 최근 수년간 도시별 금융 경쟁력을 나타내는 '국제금융센터지수' 조사에서 뉴욕을 따돌리고 1위를 기록했다. 금융산업 종사자 수도 32만5000명으로 이미 뉴욕(31만9000명)을 앞질렀다. 증시에 상장하는 기업공개(IPO) 금액에서도 지난해 런던증시가 뉴욕증시를 앞섰다.
이 때문에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런던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올해 초에는 하워드 울프슨 뉴욕 부시장이 직접 런던을 방문해 기업 관계자 앞에서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과 두 라이벌 시의 장점을 비교하는 공개 토론회를 벌였다. 또 리보 금리 스캔들이 터지자 미국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리보 대신 미 연방기금 실질 금리나 미 국채금리를 글로벌 금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크와시 크와르텡 영국 보수당 의원은 "미국은 역사적으로 증거가 별로 없는데도 기업을 수사한 사례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