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성인 여성을 성폭행(강간)하려다 피해자와 합의하면서 처벌을 면한 20대 남성이 2년 전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려 했던 혐의가 뒤늦게 드러나 구속됐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 2010년 17세이던 A양을 성폭행하려던 혐의로 이모(26)씨를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이씨는 당초 지난 5월 서울 동작구의 한 술집 부근에 취해 쓰러져 있던 20대 여성을 근처 숙박업소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던 혐의로 검거된 사람이다. 하지만 이씨는 피해 여성과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금전적 배상을 약속하고 합의하면서 처벌받지 않았다. 형법상 성인 여성 상대 성폭행범은 피해자의 고소(처벌의사)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 '친고죄(親告罪)'로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늦게 2년 전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려던 혐의가 드러나면서 이씨가 구속된 것이다. 경찰은 5월에 이씨가 성인인 피해자 여성과 합의를 하면서 처벌할 수 없었지만, 그의 여죄를 계속 추적한 끝에 미성년 성폭행 혐의를 확인해 구속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성범죄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처벌이 다른 현행 법규정 때문에 생겼다.
1953년 처음 형법이 제정된 이후 50년 이상 성범죄자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처벌받지 않아 왔다. 성범죄자에 대한 국가의 공소제기(기소·起訴)는 피해자의 명예실추 같은 2차 피해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에 형법 제정 때부터 이를 친고죄로 규정한 탓이다. 하지만 8세 여아를 무참히 성폭행한 이른바 '조두순 사건'과 장애인 상대 성폭행범이 가벼운 처벌만 받은 이른바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2010년부터 미성년자, 작년부터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는 피해자의 직접적인 고소(친고)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 법에 따르면 미성년·장애인 상대 성범죄는 피해자 고소와 상관없이 수사·처벌이 가능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고, 증거가 확보돼 있어서 처벌이 가능했다"며 "미성년 상대 성범죄자는 고소 없이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고 가해자 이씨의 피가 벽에 묻었기에 다행이지, 하마터면 미성년 성범죄자를 사회에 다시 보낼 뻔했다"고 말했다.
성범죄가 갈수록 늘고 그 양상도 흉포화하면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고, 직접 고소해야만 성범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에 대한 재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11년 성폭력사범처리 현황(대검찰청)에 따르면 2007년 1만4324명이었던 성범죄 사범은 2010년 1만8600명으로 4년 만에 4276명이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성폭력 사범에 대한 기소율은 47.5%로,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형사 고소해야만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 탓이다.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친고죄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처벌이 안 된다"며 "그런 경우가 60~70%는 된다"고 말했다.
성범죄의 증거 채집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수사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가해 남성의 정액을 채취하는 등 증거가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 입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서영교 의원은 "아동 상대 성범죄는 피해자인 어린 아동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며 "수사와 기소과정에서 이런 점이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