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주희(17·고1)양은 집과 학교가 각각 다른 섬에 있어 통학선을 타고 등·하교를 한다. 매일같이 배로 통학하면서 통학선 선원인 박모(61)씨와는 낯이 익었지만, 지난 1월 박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통학선에 사람이 거의 타지 않은 점을 노려, 박씨가 주희양을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고 가슴과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진 것이다.

해경 조사결과, 박씨는 2010년 7월에도 통학선으로 하교하던 A양(14·당시 초등학교 6학년)을 통학선 선실로 강제로 끌고 들어가 성추행한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해경 관계자는 "도서(島嶼)지역은 아무래도 치안이 허술해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성범죄가 비일비재하다"면서 "피해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껴 주변에 알리지 않기 때문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성범죄가 일어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태안군 S초등학교 4학년 김모(10·오른쪽)양은 1학년인 남동생(8)과 함께 집에서 2㎞ 정도 떨어진 학교로 가는 길이 “무섭다”고 한다. 이 남매가 다니는 통학길은 농로와 마을 입구의 외진 비포장길 등 사람 왕래가 적어 낮에도 을씨년스러울 정도였지만, 방범용 CCTV는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농어촌 지역 아동과 청소년들이 등·하굣길 성범죄 불안에 떨고 있다. 농로나 외딴길 등 수㎞를 걸어 통학하는 경우가 많아 도시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범죄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2011년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농촌 지역 학생들은 도시 학생보다 성적인 피해를 훨씬 더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이 전국의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92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간 성적인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농촌 학생들은 4.8%로, 대도시(3.4%)나 중소도시(2.9%)보다 더 높았다. "집 주변이 범죄에 매우 위험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농촌 학생(9.9%)들이 도시 학생(8.4%)보다 더 많았다.

이화여대 노충래 교수(사회복지학)는 "경남 통영 '한아름양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농·산·어촌 아이들을 보호할 만한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혼자서 가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안전 불감증에 해당할 만큼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같이 다닐 친구들이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농촌 인구가 급감하면서 동네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한 명밖에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농촌 부모들은 바쁜 와중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녀를 등·하교시키는 경우가 많다. 전북 정읍의 송모(44)씨는 지난해까지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매일 차로 등·하교시켰다. 송씨는 "세상이 하도 험하다 보니 딸을 직접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지 않으면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농촌 지역 아동은 혼자서 등·하교를 하고 있다. 충남 태안군 S초등학교에 다니는 이모(10)양은 남의 집 염전에서 일하는 아버지(57)와 단둘이 산다. 어머니는 7년 전 집을 나가 기억에도 없다. 아버지는 당뇨와 고혈압을 앓아 병원 신세를 질 때가 잦아서 고사리손으로 빨래, 설거지 등 살림을 도맡고 있다. 문제는 이양이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종종 늦은 시간에 등교한다는 점이다.

이 학교 손찬희 교사는 "이양의 집이 학교에서 1㎞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 등교한 시간에 (시골길을) 혼자 다닐 때는 안전 문제가 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S초등학교는 1~6학년까지 전교생이 48명인 소규모 시골학교다. 이 중 조손가정 학생이 10명, 한부모가정 학생이 7명으로 전체의 35%를 넘는다. 조손가정의 경우 부모가 이혼해 조부모에게 맡기거나, 가정 형편상 맞벌이 부부가 자녀를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맡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로나 외딴길을 혼자 걷다 범죄 표적이 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학교 정동운 교사는 "외진 길로 통학하는 아이들이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도록 지자체 등에서 방범용 CCTV나 가로등을 더 설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