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를 가르치려 하지 마시고 나를 이해해 주세요. 제가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 아녜요."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이 가출을 선택하는 이유는 '가정 해체'보다 '소통 부재'가 더 큰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본지가 입수한 가출 청소년 423명의 심층 면접 설문지엔 '부모와의 갈등, 지나친 간섭, 차별 등 가족과 소통이 되지 않아 집을 나왔다'고 꼽은 청소년이 전체의 55.1%에 달했다.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 등에서 오는 가정 해체(6.5%)보다 10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가출을 하게 된 이유로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18.2%)을 꼽은 청소년도 있었다. 학교 부적응과 따돌림, 가난한 것을 비관한 것도 집을 떠나게 된 이유였다.

가출 청소년이 가출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본지가 분석한 가출 청소년 423명의 설문지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의 사연이 가감 없이 담겨 있었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남기라는 문항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이해' '간섭' '구속'이었다. 경기도에 사는 한 가출 청소년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만 더 이해하고 한 번 더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썼고, '부모님, 너무 간섭하고 다그치지만 말고 진심으로 다가오세요'라고 쓴 청소년도 있었다.

한 번 가출해본 청소년의 절반 이상(55.4%)은 가출일수가 15일 이상인 것으로도 밝혀졌다. '지금까지 3번 이상 가출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10명 중 6명(61.6%)에 달했다. 이 중 가출 청소년끼리 모여 동거하는 형태인 '가출팸' 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3명 중 1명꼴(37.1%)이었다.

423명 중 282명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범죄를 저질러 봤다'고 했다. 가장 많이 저지른 비행은 강도, 절도, 금품 갈취(36.6%)였고 심한 경우 성폭력과 성매매로 이어지기도 했다. 23일 밤 신림동 고시촌에서 기자와 만난 '가출팸' 김은지(가명·18)양은 "배가 고플 때마다 편의점에서 통조림이나 과자를 훔치거나 나보다 약해 보이는 애들의 돈을 뺏었다"며 "남자들은 피서철을 맞아 해수욕장을 돌며 '퍽치기'(취객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해 금품을 빼앗는 것)를 하겠다고 떠났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11시 30분쯤 서울 관악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덥고 좁은 숙소를 피해 에어컨이 24시간 가동되는 카페를 찾는다.

이번 조사는 사단법인 세계빈곤퇴치회가 지난 5월부터 두 달 동안 전국의 가출 청소년 423명을 심층 면접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가출 청소년을 돌봐 온 송정근·장동섭 연구원이 서울 대전 부산 등 전국 18개 시도 28개 지역을 돌며 가출 청소년을 직접 만나 1대1로 면접 조사했다.

사회에 대한 원망, 비판 그리고 자립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빼곡히 적었다. 인천에 사는 한 가출 청소년은 "제발 행복하게 해주세요. 초·중·고가 아니라 엄마·아빠가 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고, 부산의 한 가출 청소년은 "가출은 청소년이라면 한 번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길로 가지 않게 안전한 일자리를 주세요"라고 했다. 10명 중 1명은 자립할 수 있게 일자리를 달라고 적었다.

송정근 연구원은 "보고서를 만들면서 청소년수련관, 상담지원센터만 지을 것이 아니라 이들이 범죄 충동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대안이 절실함을 느꼈다"며 "장기 가출자의 경우 아예 사회적 기업이 정당한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의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