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適者生存). 전 이 말을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해석해요."(웃음)
김현구(28·분당차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사진)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필기왕'이다. '필기왕, 노트 정리로 의대 가다' '고 1부터 준비하는 마법의 노트 정리법' 등 필기 관련 책을 두 권이나 펴냈다. 지난달 초엔 '수줍은 느낌의 미소'란 에세이를 출간했다. '수줍은…'은 그가 운영 중인 블로그(medwon.egloos.com)의 이름으로 누적 방문자 수가 1000만 명이 넘는다. 최근엔 학습법을 공유하는 '나눔학당'(cafe.naver.com/nanumhak)도 개설, 운영 중이다. 그는 고교 입학 당시만 해도 전교 등수가 백단위인 전형적 중하위권 학생이었다. 하지만 노트 정리법을 적용한 후, 1년여 만에 전교 1등에 올라서는 '기적'을 연출했다. 지난 6일, 필기법 하나로 일약 청소년의 '멘토'가 된 그를 분당차병원(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서 만났다.
◇게임광 아들, 어머니 솔선수범에 ‘변신’
김씨는 중학교 때만 해도 ‘게임 맘껏 할 수 있는’ PC방 사장을 꿈꿨던 고만고만한 학생이었다. 그가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머니였다. 틈날 때마다 놀기 바쁜 아들의 맘을 바로잡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공부하란 잔소리 대신 ‘솔선수범’을 택했다. “저보다 먼저 책을 펴드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차마 TV 보거나 나가 놀 수 없었어요.” 하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고심하던 그는 문득 평소 어머니가 공부하던 내용을 노트에 꼼꼼하게 정리해두시던 게 떠올랐다. “어머니 노트를 펼쳐보며 ‘이거다!’ 싶었어요.”
그가 처음부터 노트 정리의 ‘달인’이었던 건 아니다. “나름대로 내용 정리를 끝냈는데 추가할 내용이 나중에야 떠올라 기존 노트를 찢고 다시 쓴 적도 많아요. 오려 붙인 삽화가 당초 생각보다 너무 커 설명 쓸 자리가 모자랐던 적도 있고요.”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필기 비법’을 완성한 그가 고교 시절부터 지금껏 작성한 노트는 60여 권. 그는 “요즘은 병원 업무가 많아 예전처럼 필기에 시간을 투자하진 못하지만 의대 시절 정리해둔 노트 덕은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상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당시 노트에 덧붙여 정리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두면 예전 지식에 새로운 지식까지 더해져 좀 더 완성도 높은 저만의 재산이 되거든요.”
◇필기, 어디까지나 ‘수단’… 기본기 닦아야
필기 실력이 여기저기 알려진 이후 그는 온라인으로 질문을 받거나 크고작은 오프라인 행사에 초청돼 강연했다. 그가 꼽는 최고의 필기 요령은 ‘내가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절대로 ‘정리를 위한 정리’가 돼선 안 됩니다. 예쁘게만 정리하려다 보면 스트레스만 쌓이게 돼요. 남이 보기엔 대충 휘갈겨 쓴 것 같아도 본인이 알아보고 참고하기 적합한 형태로 정리돼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에 따르면 노트 정리는 어디까지나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기초 실력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트 정리에만 시간을 쏟는 건 아무 소용없습니다. 어떤 학생은 1년 만에 몇백 등 수준이던 전교 등수를 1등으로 올렸다는 제 경험담에만 혹해 기본기 다지는 일을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기본을 무시하고 성적을 단기간에 올릴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에요.”
김씨는 무슨 정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학생들이 가장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목차 파악하기’를 추천했다. “목차를 보며 교과 내용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세요. 그렇게 ‘뼈대’를 세운 후 지식이 더해질 때마다 조금씩 노트에 추가하는 겁니다. 단원별 핵심은 수업 시간에 강조되는 내용, 그리고 출제 빈도가 높은 문제 속에 있습니다.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수많은 문제집과 강의가 엇비슷한 내용을 조금씩 변형해가며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그 이후부터 공부는 재밌어집니다. 성적도 자연스레 오르고요.”
김현구씨 추천 '노트 정리 5계명'
①남이 공부를 시작할 때 내 노트 정리는 끝나 있어야 한다
②공간 배분이 고민이라면 링바인더가 해답일 수 있다
③그림·표 작성으로 낭비할 시간에 헌 책 삽화를 오려 붙여라
④접착식 메모지와 형광펜은 정말 중요한 경우에만 사용해라
⑤수업 중 필기는 꼭 하되, 강조하는 내용은 별도로 정리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