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지시에 따라 두 명을 차에 태웠지만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군지는 모른다." "화물연대에서 시키는 대로 대포차량과 대포폰을 구입해 지정된 장소에 갖다놨을 뿐 그 차량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 누가 시켰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화물연대 총파업 직전에 발생한 울산지역 화물차 연쇄방화테러 사건 수사가 벽에 부딪쳤다. 용의자들 진술에 따르면 방화 범행은 철저한 점조직 수법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기획·지시·실행자가 누군지 안개 속에 가려 있는 것이다.
울산경찰청은 화물트럭 방화를 도운 혐의로 지난 6일 화물연대 부산지부 소속 이모(39)씨를 구속했다. 방화범들이 이동하며 불을 지르는 데 사용한 대포차량과 대포폰을 제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씨는 경찰에서 "화물연대의 지시로 대포차량과 대포폰을 구입해 지정된 장소에 갖다준 것은 맞다"면서도 "그 차량과 전화가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 지시했는지도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이어 지난 16일에는 또다른 화물연대 소속 지모(36)씨가 구속됐다. 그는 범행차량이 버려진 부산 기장군의 외딴 공터에서 방화범 두 명과 접선해 차량으로 도주시킨 혐의다. 그러나 지씨는 "나는 사람만 태웠을 뿐,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씨 역시 누구 지시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화물연대 지시에 따라 맡은 역할을 했다고만 할 뿐, 사건 전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말하고 있고, 지시한 윗선도 밝히지 않는다"며 "마치 점조직 범죄단을 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방화테러의 범행 수법 역시 '프로'의 냄새가 난다. 전국적인 화물연대 총파업 전날인 지난달 24일 새벽 1~4시 사이에 울산과 경주지역 10곳에서 모두 19대의 화물차가 연쇄적으로 불탔다. 당시 방화범은 CCTV를 교묘하게 피해 한적한 공터에 세워둔 차량만 집중 공격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화물연대 비조합원이나 탈퇴 조합원 소유의 화물차였다. 범행 경로와 이동·도주로도 사전답사해 완벽하게 숙지한 뒤 불을 지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방화범들이 부산에서 소나타 차량으로 출발, 경주까지 올라간 뒤 다시 경주~울산 간 7번 국도를 따라 울산 북구·중구·남구·울주군 방면으로 내려오면서 국도변 10곳에서 연쇄 방화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최소 두 명의 방화범이 사전 각본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동하며 방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범행 때 추적이 불가능한 대포차량을 동원했고, 연락도 대포폰으로 했다. 게다가 범행 증거물인 차량도 부산 기장군의 한적한 공터에서 엔진번호까지 불태워 흔적을 없앴다. 경찰은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게릴라식 테러"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또 "조직 범죄인 것은 분명한데 검거된 용의자들이 모두 점조직 형태로 연결돼 아래 위 지시선을 말하지 않고 있다"며 "어찌됐든 화물연대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방화테러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화물연대 부산지부 등은 최근 경찰의 압수수색 당시에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증거를 빼돌린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화물연대 부산지부장 등 집행부는 묵비권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방화테러 발생 4주째가 되도록 범행을 도운 화물연대 조합원 두 명만 구속했을 뿐 직접 방화에 가담한 방화범은 전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자칫 미궁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