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는 16일 한국 신문방송 편집인협회 초청토론에서 5·16에 대해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5·16과 유신(維新)시대에 대해 "찬반 논란이 있기 때문에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도 했다.
4·19와 5·16은 민주화와 근대화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두 물줄기가 시작된 기점(起點)이다. 조선일보와 한국정당학회가 2010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26%는 민주화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4·19를 꼽았고, 국민의 37%는 5·16을 산업화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요인으로는 '경제 발전에 따른 국민의식 성숙'이라는 응답이 48%로 민주화 투쟁(34%)이나 야당의 견제(12%)를 웃돌았다. 5·16은 4·19 혁명으로 이승만 10년 장기독재를 무너뜨린 후 민의(民意)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선 '반(反)민주'라는 평가를 면할 순 없다. 그러나 5·16은 빈곤을 몰아내고 민주주의가 성립할 경제적 토대를 만든 것이 사실이다. 이미 국민 의식 속에선 4·19의 민주화와 5·16의 산업화는 상호 배격하는 갈등 관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오늘을 짜낸 날줄과 씨줄로서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 후보의 5·16 인식은 국민 개개인의 입장과 소신 차이에 의한 찬반(贊反)이 따를 수는 있을지언정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박 후보의 유신에 대한 생각에 공감(共感)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박 후보는 5·16처럼 유신도 그 평가를 국민과 역사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10월 유신을 감싸는 사람들은 당시 월남 패망에 뒤따른 안보적 공황(恐慌) 사태와 경제구조 고도화를 위한 중화학 공업 육성 필요성을 들며 1인 독재의 효율적 통치가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질식 상태로 몰고가 부마(釜馬) 민주항쟁을 불러오고 이어 10·26을 거쳐 5·17에 이른 한국 민주주의의 고난(苦難) 시대인 유신통치를 그런 이유로 긍정(肯定)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박 후보가 5·16과 유신체제를 같은 선상에 놓고 같은 평가를 한다면 국민은 박 후보의 5·16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대한민국 현대사 전반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박 후보는 5·16 평가와 유신 평가를 달리해야 하고, 그래야 5·16 평가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박 후보는 또 토론에서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해 "제 이름을 팔아서 하는 경우는 다 거짓말이다. 속지 않으셔야 한다는 말씀을 자신있게 드린다"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전 "비리 척결에 대통령 친인척도 성역이 될 수 없다"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세 아들에게 근신을 당부한 사실을 공개하며 "친인척을 엄중 관리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 친인척 중에는 청탁을 주고받을 만한 주변머리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가족 관련 잡음(雜音)이 들려올 때마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했지만 한국 대통령의 후진적 비극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수치(羞恥)인 대통령 가족 비리는 계속됐다. 박 후보의 친인척 비리에 대한 현재 인식은 상황의 심각성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여권의 사실상 유일한 대선주자이고 여야를 통틀어 현재 가장 확실한 선두주자인 박 후보는 자신의 생각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고, 그런 국민의 생각이 오는 12월 19일 어떻게 표로 나타날지를 다시 한 번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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