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대한 우려로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길 수 없기 때문일까.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가 불황 앞에서 예년만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팜플로나는 조용한 순례자의 도시다.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 하나인 나바라주의 주도(州都)로 20만명이 살며 인구밀도는 낮은 편이다.
그렇지만 이 도시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시끄러워진다. 이 도시의 수호 성자 '산 페르민'을 기념하기 위한 '산 페르민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는 3세기 말 팜플로나의 주교였지만 소에 밟혀 죽었다고 알려졌다. 매년 7월 6일 정오부터 7월 14일 자정까지 9일 동안 스페인 전역과 전 세계의 관광객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다.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매일 아침 8시에 열리는 소몰이(encierro) 행사다. 소몰이 행사에 참가하는 2000~3000명의 관광객은 산토 도밍고 사육장에서 풀어놓은 6마리의 거대한 투우 소들과 뒤엉켜 좁은 중세의 성곽길 825미터를 질주한다. 소몰이라고 하지만 사실 참가자들이 소보다 앞서 달리기 때문에 날카로운 뿔에 받히거나 밟힐 위험이 크다. ‘죽음의 광란’이라고도 불리는 이 위험천만한 행사에서 1867년 이후 모두 14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
1591년 처음 시작된 산 페르민 축제가 축제 많기로 소문난 스페인에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소에게 쫓기며 얻는 극도의 긴장감과 해방감을 참가자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는 것. 스페인 정부도 매년 이 행사에 지원금을 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경제학자 후안 메디나의 논문에 따르면 9일간의 축제기간 동안 50만명의 관광객이 소몰이에 참가하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다. 도시의 인구가 20만명 임을 감안하면 축제기간에는 관광객들이 두 배 이상 더 많은 셈이다. 팜플로나 시는 매년 2100만유로(약 295억원)을 이 축제를 통해 벌어들인다. 단 9일 만에 팜플로나 시(市)의 재정 수입 7000만유로 가운데 삼분의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축제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8년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한다. 나바라 지역 일간지 디아리오데나바라는 9일(현지시각) 축제기간이면 빈방이 전혀 없던 이 지역 호텔들이 높은 공실률로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바라 숙박업소 연합회(AEHN)에 따르면 축제 초반인 지난 6,7,8일 90% 수준이던 숙박률은 9일 70%까지 내려왔다. 예년에는 빈틈없이 관광객들이 들어찼던 도시 외곽의 호텔들은 올해 숙박률이 60%에 불과하다. 지난 2010년 이전에는 축제가 시작하기도 전에 인근 모든 호텔방이 예약을 마쳤었다. 경제 사정이 열악했던 지난해에도 숙박율은 90%를 넘었다.
정부의 지원도 줄었다. 유럽중앙은행(ECB)로부터 재정 적자 감축을 권고받은 스페인 정부는 올해 산페르민 축제에 대한 지원금을 8% 삭감했다. 정부 지원금은 최근 4년 연속으로 줄었다. 정부의 지원금이 줄면서 팜플로나 시 정부도 축제 예산을 10% 낮춰 잡았다. 예산이 줄면서 축제 기간 열리는 연극, 음악회 등 부대행사도 축소됐다.
평소에는 두 개 채널에서 중계하던 행사 생방송도 올해는 한 개 채널에서만 한다. 중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계권을 공동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축제가 제대로 열리지 않으면 스페인 최고의 축제라는 산 마르틴 축제 고유의 브랜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AEHN의 나초 칼보 사무총장은 인터뷰를 통해 "올해 심각한 경제 위기로 기대를 낮춰 잡은 것은 맞다"면서도 "스페인 정부와 시 정부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축제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