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3학년도 검인정 중학교 국어 교과서 8종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시 5편과 산문 2편을 빼라고 출판사들에 권고했다. 평가원은 4·11 총선 때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도종환 시인에 대해 "특정 정당을 선전하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교과서 검인정 심사 기준을 적용해 삭제 권고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평가원은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영화 '완득이'에 다문화 가정 엄마로 출연한 사진을 실은 교과서에도 똑같은 잣대로 삭제하라고 했다.

베스트셀러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스타로 떠올랐던 도종환 시인의 작품은 2002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처음 실렸다. 당시 교과부가 교과과정을 개편해 1980~2000년대 시 20편을 수록하기로 결정한 덕분이었다. 교과서 필진도 도종환의 시가 현실 비판과 서정성, 대중성, 공동체 연대(連帶) 정신을 고루 갖추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중학교 국어 교과서 8곳, 고교 교과서 4곳에 실려있다.

전교조 해직 교사였던 도종환은 진보 문학 단체의 간부를 지냈고, 지금은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 '담쟁이'는 담쟁이 잎 수천개가 서로 손을 잡은 채 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노래한 시로, 문재인 상임고문의 후원회 조직 '담쟁이 포럼'을 작명하는 데도 활용됐다.

평가원은 이번에 "특정 정당을 선전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지만, 도종환이라는 정치인이 특정 정당의 특정 인물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지 그의 시가 특정 정당을 선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정주 시인은 1997년 진보 진영이 주도한 친일(親日) 시비에 휘말려 국정 교과서에서 밀려났다가 다시 중·고교 교과서에 13편이 수록되면서 문학적으로 되살아났다.

시를 시로, 소설을 소설로 읽지 못하고 작품의 예술성보다 정치와 이념의 체취를 먼저 검열하는 우리 사회의 난독증(難讀症)은 좌파 진영이 정권을 잡은 이후 더 두드러졌다. 시인이 시와 정치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고 정파(政派)에 매몰돼도 곤란하지만, 정치 논리가 시인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잣대가 돼도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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