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현행 헌법은 평화헌법(헤이와 켄포) 또는 전후헌법(센코 켄포)이라 불린다. 요즘 일본이 헌법 제9조를 개정하거나 재해석하겠다고 밝혀 주변국가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사고 있다. 9조는 일본이 전쟁수행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정식 군대가 아닌 자위대를 갖게 된 배경이다.

1947년 제정된 일본 헌법은 일본점령군사령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더글러스 맥아더 개인의 입김이 거의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9조와 함께 여성의 참정권 부여였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맥아더의 측근 참모들조차 시기상조라며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맥아더는 이를 한마디로 일축, 헌법에 넣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시절, 맥아더의 말씀은 곧 법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여성의 지위향상에 관심이 많았던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이유를 묻는 측근들의 질문에 "여자들은 원래 전쟁을 싫어하니까"가 맥아더의 답변이었다. 일본이 또 전쟁을 일으킬까 우려해 여성의 참정권을 강제로 집어넣은 것이다.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9조와 관련해서도 일화가 전해진다.

원래 헌법초안부터 이 조항은 명문화돼 있었다. 초안을 본 맥아더는 결재과정에서 아무 말없이 9조를 지어버렸다. 빼라는 지시였다. 초안작성에 깊숙이 관여했던 맥아더의 최측근 커트니 휘트니 장군은 사령관의 지시에 어리둥절했다.

휘트니의 회고록에 그 이유가 나온다. 맥아더는 9조가 훗날 논란이 될 것을 예견했다. 초안을 그대로 일본에 넘겨주면 나중에 "이 조항은 미국의 강요로 삽입됐다"는 불만이 나와 개정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일본 스스로 이 조항을 넣어줄 것을 요구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맥아더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얼마 후 당시 총리인 키주로 시데하라 일행이 맥아더를 찾아왔다. 일본은 앞으로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으니 이 같은 내용을 헌법에 포함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몇차례 다짐을 받은 후 맥아더는 헌법초안에 서명했다.

중의원을 통과한 헌법은 지금까지 수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 9조는 미국이나 맥아더의 강압에 못이겨 통과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자발적인 요청으로 헌법에 포함돼 개정할 엄두를 못낸 것이다. 맥아더의 선견지명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일본이 군비증강을 서두르는 중국을 이유로 자위대를 정식 국방군으로 바꾸고 전쟁에도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재무장할 뜻을 내비쳐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가 공격을 받았을 경우 일본도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주변국들에겐 악몽이다. 일본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되면 한반도는 또 다시 긴장 모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국과 일본에 맞서 자위권을 행사할 무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은 이 같은 불안과 우려를 한꺼번에 불식시켜주는 카드다. 한국으로 보면 안보를 지켜주는 아주 유용한 '볼모'다. 미군의 주둔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통일이 된다하더라도 미군의 계속 주둔은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해 한반도는 평화를 유지할 있게 된다.

주한미군을 '외세'라고만 보지 말고 우리의 안보를 위한 '볼모'라 생각하면 거부감이 없을 지 싶다.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진보·좌파의 주장은 포퓰리즘이자 근시안적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