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물류(物流) 대기업들은 제대로 물건을 나르는 물류회사가 아니다. 중간의 다단계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화물연대 파업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지난 2008년 화물연대 파업이 끝난 직후 당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한 말이다. '운송 의뢰회사→알선회사→운송회사→화물차 운전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로 인해 알선수수료를 떼고 나면 화물차 운전자들의 실수입이 형편없이 줄어들고, 그래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거론한 것이다.
정 전(前) 장관의 말대로 4년 만인 올해 다시 화물연대 파업이 벌어졌다. 다행히 물류대란(大亂)이 심각해지기 전에 화물연대와 운송업체들의 운송료 협상이 타결됐다. 그러나 다단계 운송을 포함한 국내 물류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어 언제라도 파업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다단계 운송구조는 국내 물류산업의 영세성과 관련이 있다. 국내 물류관련 기업은 16만개가 넘는다. 종사자는 55만명으로 업체당 평균 직원 수는 4명이다. 수많은 '개미 기업'들이 바글대며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성과 생산성,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수출규모 세계 7위의 무역대국이다. 공항 국제화물 처리량 세계 4위, 상선(商船) 보유량과 항만 컨테이너 처리량 세계 5위의 물류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물류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지나지 않는다. 변변한 물류 전문기업이 없다 보니 삼성전자는 해외물류의 70%를 DHL 같은 외국기업에 맡기고 있다.
이는 대기업들이 저마다 물류 자회사를 두는 데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다. 대기업 물류회사들은 모(母)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기대서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다른 알선업체나 운송회사에 일감을 넘기고 수수료를 떼는 거간꾼 역할만 하기도 한다. 이렇게 대기업들이 자기 화물(貨物)을 직접 처리하거나 수수료 장사를 하는 풍토에선 물류 전문기업의 설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정종환 전 장관은 재임 시절 여러 차례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제3자 물류회사를 키워내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빈말에 그치고 말았다. 제3자 물류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등을 내놨지만 역부족이었다.
최근엔 정부 정책이 아예 거꾸로 가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글로벌 물류기업을 육성하겠다며 현대글로비스, 범한판토스, CJ GLS, 한진, 현대로지스틱스, 장금상선 등 6개 지원업체를 선정했다. 이 중 장금상선을 뺀 5개사는 대기업 계열사다. 더구나 현대글로비스와 범한판토스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빚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정부가 독립적인 물류 전문기업을 키워낸다는 방침을 슬그머니 뒤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한국판 DHL을 키운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다. DHL은 세계 220여개국에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 매출액 35조원에 직원이 27만명을 넘는 거대기업이다. 250여대의 자체 보유 항공기를 포함해 500대가 넘는 화물기와 수만대의 운송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형편엔 이런 DHL 같은 기업을 하나 키워내기도 버겁다. 그런데 정부는 한국의 DHL 후보를 6개나 고른 것으로도 부족해 내년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 신청을 더 받겠다고 했다. 해외투자 자금에 대한 수출입은행 융자와 물류 전문인력 양성 지원으로 DHL 같은 기업을 몇 개씩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부의 현실인식과 판단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정책은 정부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