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엔 오히려 '블루 오션' 더 살려면 더 공부… 평생 교육이 대세

강영중(63) 회장이 셔틀콕의 순간 최고 속도를 아느냐고 물었다. "프로 선수들 스매싱은 시속 340㎞까지 나와요. 타이거 우즈가 스윙한 골프공보다 파워풀하지요. 이게 동네 공터 종목이 아닙니다(웃음)." 배드민턴광인 그는 셔틀콕의 승부를 경영에도 곧잘 비유한다. 상대의 공격 루트를 예측할 것, 공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감지할 것, 받아칠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것. 뭣보다 몸이 가볍고 유연해야 무게 5g에 불과한 셔틀콕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다.

“아이고, 이건 배드민턴 치는 자세가 아닌데….”서울 방배동 대교 사옥 6층에 조성해놓은‘셔틀공원’에서 강영중 회장이 배드민턴을 들고 파안대소했다. 세계배드민턴연맹회장으로‘치는 실력’보단‘보는 실력’이 뛰어난 강 회장이 말했다.“ 이용대가 송곳이면 정재성은 해머지요. 용대의 파워가 아쉬워요.”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학습지 시장의 '신화' 같은 존재다. 1975년 서울 종암동에서 학생 3명을 앉혀놓고 시작한 공부방을 국내 1위의 교육 문화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지금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1대1 방문 교육' '눈높이 교육'을 그가 처음 창안해 히트시켰다. 그가 주도한 학습지 시장의 규모가 4조원대이고, 현재 방문식 교육을 받는 학생이 1000만명에 육박한다. 저출산으로 시장이 침체 위기에 빠졌지만 그는 더욱 공격적이다. 지난 10년간 세계 16개국에 대교를 진출시킨 데 이어 오는 7월에는 미국 뉴저지에 미주 지역 본부의 새 사옥을 연다. 지지부진했던 미국 시장에 내미는 재도전장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세계무대에서 얻겠다는 전략이다."리스크(risk)요? 리스크 없는 사업은 사업이 아니죠(웃음)."

글로벌 삼성? 글로벌 대교!

―대교의 미국 진출은 이미 1991년에 이뤄졌다. 7월 뉴저지에 미주 지역 본부를 재개관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LA에 대교 아메리카 본부를 두었던 초창기와는 전혀 다른 전략으로 간다.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기존 방식은 안이한 발상이었다. 한국의 눈높이 교재를 영어로 번역해 공급한 수준이었으니 한국 시장의 속성을 못 벗어났다. 미국 시장에 대교를 알리려면 현지인을 공략해야 했다. LA가 아니라 미국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이 사는 동부를 공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떻게 공략한다는 것인가.

"한국 교재가 아니라 글로벌 교육 교재로 미국 시장을 파고든다. 이미 '이노피 매스'(수학) '이노피 잉글리시'(영어), '이노피 코리안'(한국어)을 출간해 미국 초·중등학교 교과서로, 보조 교재로 공급하고 있다. 학력 미달 학생들을 위해 미국 교육 당국이 실시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 SES(Supplementary Educational Service)에 교재를 제공하는 업체로도 선정됐다.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다."

―한국에서처럼 가가호호 방문식 교육은 아닌가 보다.

"미국에서 방문식으로 했다가는 길거리에서 모든 비용을 탕진할 거다(웃음). 도시마다 15~40곳의 러닝센터가 있고 아이들이 그곳으로 와서 배운다. 센터 1곳당 학생 수가 100명 정도다. 교사는 모두 미국 현지인이고 뉴저지 본부에서 교사 훈련을 받는다."

―대교 아메리카의 새 사옥이 들어서는 건물이 원래 삼성 글로벌 센터가 있던 곳이라고 하더라.

"오늘의 삼성이 되기까지 세계무대 진출의 발판이 된 빌딩이다. 그 후광을 대교가 입어보자는 생각에서 구입했다. 대교라는 별 볼일 없는 회사가 미국 사회의 관심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웃음)."

―홍콩, 중국, 호주, 영국, 독일 등 세계 16개국에 진출해 있다.

"홍콩과 말레이시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홍콩 대교는 일본 구몬을 제치고 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과목당 12만원에서 18만원까지 받는다. 미국에서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철저한 로컬 마케팅을 펼쳤더니 고객의 95%가 현지인이다. 중국 베이징에도 2002년 현지 법인을 설립했는데 폐쇄적인 법과 제도, 중국인의 독특한 기질 때문에 아직은 탐색 단계다.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유럽발 경제 쇼크로 세계경제가 암흑이다.

"기업은 항상 리스크를 안고 간다. 그걸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경영의 노하우 아닌가. 오랜 경험과 탄탄한 조직이 있으니 가능하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교육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IT뿐 아니라 교육열, 교육 노하우 또한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경쟁력 있는 제품이다. 대학 진학률이 90%를 넘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 있나. 물론 사회적 낭비라는 말도 나오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들어설 수 있었던 거다."

◇사교육은 惡인가?

―세계시장에 한국의 사교육 바람을 몰고 갈 모양이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자. 무엇이 공교육이고 무엇이 사교육인가?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교육을 제외하고는 다 사교육이다. 사립대학, 사립고등학교, 사립초등학교도 사교육이다. 교육부가 조금이라도 지원하면 공교육이라고 하는데 정의부터 잘못됐다. 그리고 공교육이 위에 있고 사교육은 아래라는 식의 수직 관계 설정도 문제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지배·종속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 관계다. 한국 교육의 힘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옛날 한 반에 70~80명 되는 교실에 2부제, 3부제로 수업하는 학교 공부로 인재를 키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보충을 어머니, 아버지, 형과 누나, 삼촌이 대신 한 거다. 지금은 사교육이 그 역할을 한다. 공교육이 학생들에 대한 개인별, 능력별 학습을 못 해주니 사교육이 그걸 보완해주고 있는 거다. 아무리 훌륭한 공교육이라도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정부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등 주요 교육 정책에서 민간 교육 기업을 배제했을 때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가 달라진 것을 정부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소비자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선택한 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고액 과외 등 사회적으로 위화감을 형성하는 사교육까지 찬성하는 건 아니다. 비록 사교육이라도 기회균등이라는 교육의 본래 가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대교 학습지는 1과목당 월 3만원이다. 영어, 수학, 국어를 다 해도 10만원이 안 된다.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250만~300만원이라면 3% 수준이니 부담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1975년 공부방을 처음 시작할 때 과목당 5000원이었는데 2012년에 3만원이다. 돈을 좇았다고 하면 이런 가격 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

―학습지만 가지고도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학습지는 매일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준다. 학습지를 가지고 스스로 공부할 수 없는 아이는 고액 과외를 받아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학습지를 애물단지처럼 여기는 부모가 한둘인가. 교사는 잠깐 와서 과제 검사만 하고 가고, 아이는 밀린 학습지 앞에서 짜증을 내고, 그러다 보면 엄마 숙제가 되고.

"그건 100% 학습지 교사의 책임이다.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절대적으로 교사의 잘못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사 훈련을 시킬 때 직업적인 사명감, 윤리관부터 확고하게 심는다. 학생이 1명 떨어져나가면 자신의 교수법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한다. 한 달에 3만원 받으니 그만큼만 교육한다는 생각이면 대교 교사가 될 수 없다. 내가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교사 퀄리티만큼은 엄격하게 관리한다."

―4조원대 학습지 시장에서 대교가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뭘까.

"R&D 즉 연구개발이 하나고, 다음이 교사 교육이다. 연간 교사 훈련비로 대교 전체 매출의 2%가 나간다. 우리의 경영 방침은 철저하게 학생 중심, 학습자 중심이다. 남들은 교과 중심, 교사 중심으로 나가지만 우리는 학생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맞춤 교육을 한다. 교사의 능력이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요즘은 다른 업체들도 우리를 따라오는 모양인데, 우리가 37년간 쌓아온 무형의 자산을 그리 쉽게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과는 업계 라이벌로 곧잘 비교되곤 한다.

"그 분과는 출발 자체가 다르다. 윤 회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업 사원으로 시작한 분이고, 나는 공부방 교사로 시작한 사람이다. 윤 회장의 조직 경영, 비즈니스 감각은 정말 탁월하지. 그러나 교육 부문만큼은 교육자로 시작한 나의 출발이 오늘의 1위를 고수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세계 최초의 1대1 방문 교육

경남 진주 태생의 강영중이 스물다섯 살 때였다. 아버지의 병세는 깊어졌고, 대학을 마치고 군대를 제대했지만 제1차 오일 쇼크로 취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4남매의 맏이로 가장 역할을 해야 할 그에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구몬수학'을 알려준 이는 작은아버지였다. 1968년 대학 입학 예비고사가 도입돼 한국 교육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과외 교습이 성행할 때다. 서울 종암동에 학생 셋을 앉혀놓고 우리말로 번역한 구몬수학(공문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대교의 첫출발이다. "잘될 리가 없죠. 어머님이 넌 사업이 안 맞으니 빨리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까지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오기가 생깁디다. 나에게 결투를 신청해온 운명이란 놈과 싸워보고 싶더라고요."

―자서전 '배움을 경영하라'에 보니 종암교실 시절 고생을 많이 하셨더라.

"홍보를 한답시고 밤새 수채화 물감으로 포스터를 그려 전봇대에 붙이고 엄마들 많이 가는 미장원에 갖다 붙였다. 한데 다음 날 비가 주룩주룩 왔다. 수채 물감이 다 녹아내리는데 꼭 내 마음의 눈물 같더라. 접근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교육 사업은 포스터 디자인, 홍보 전략이 아니라 신뢰와 실력, 진정성에 성패를 거는 거였다. 학습자의 만족, 고객 만족이 최고의 광고라는 생각에 홍보는 접고, 아이 한 명 한 명을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입소문이 나더라."

―요즘 말로 족집게 교사였던 건가?

"그 무렵 성행하던 과외 지도는 교사가 매일 두세 시간씩 붙어 앉아 전 과목을 가르치는, 일방적 지식 주입이었다. 우리는 달랐다. 아이의 학년이나 교과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 스스로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부터 풀게 하면서 성취감, 공부에 대한 재미를 맛보게 했다. 학습 시간도 30분 이내로 짧아서 효율도 높았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육 방법이 먹혔던 것 같다."

―건국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한국 10대 부자에 드는 강영중 회장이지만 5000원짜리 백반을 즐겨 먹는 소탈한 할아버지다.“ 교육 기업은 사회 기업”이라는 생각에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저소득층, 다문화 가 정 아이들을 위한‘눈높이봉사단’, 비인기 종목의 여성 스포츠인들을 위한 후원은 유명하다.

"순전히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일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신념과 함께 경험이 쌓여 철학이 됐다. 처음부터 국가 번영과 인류 평화를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다(웃음)."

―생애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1980년 7월 신군부에 의해 과외 전면 금지 조치가 선포됐을 때라고 썼더라.

"공문수학이 막 자리 잡아가는 때였는데 하루아침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세상에 공부 못 하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4년 반 만에 4200여명으로 늘어난 회원이 과외 금지 조치 직후 400명으로 줄어들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 비밀리에, 음성적으로, 들키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할 만큼. 그런데 그건 도저히 못하겠더라(웃음)."

―절체절명의 위기가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1대1 방문 교육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데 3개월이나 걸렸다는 게 지금도 이상하다(웃음). 아이들이 올 수 없다면 우리가 찾아가면 되는 거였다. 아이에게 교재를 가져다주고 그 자리에서 풀게 한 뒤 다시 가져오는 방식이라 과외에 해당하지 않았다. 부모와 아이가 학습 단계를 알 수 있도록 학습 일정표도 만들어줬다. 내가 생각해도 1대1 방문식 수업은 참 효과적인 교육방식이다. 아이의 심리 상태, 가정환경에 맞춰 학습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방식이다."

'눈높이 교육'이 탄생한 비밀

대교가 시작한 1대1 방문 교육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불법 비밀과외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방문 학습의 인기는 치솟았다. 1989년에는 80개가 넘는 학습지 업체가 생기고 시장 규모도 3000억원대로 성장한다. 그러나 또 한 번 위기가 닥친다. 공문수학의 모태인 일본 구몬에서 회사명과 브랜드명을 '구몬'으로 교체하라는 요구를 해온 것이다. 동시에 엄청난 액수의 로열티를 주문했다. 고민 끝에 그는 중대 결단을 내린다.

임원들 처음엔 반대
"학부모 눈높이는 더 높다"
'성적 쑥쑥' 거짓말 안하는
키 낮춘 선생님 되고싶어

―1990년 구몬과 결별을 선언했다.

"창립 이후 15년간 줄곧 업계 1위를 지켜온 '공문수학'이란 이름을 포기하고 독자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브랜드명을 바꾸는 것은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이지만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서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키워보자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그래도 구몬 덕분에 대교가 성장한 것 아닌가.

"빚진 게 있지만 다 갚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구몬 학생이 한국처럼 많은 곳이 없다. 일본 시장도 한국보다 작다. 그 활로를 내가 만들어줬다. 방문식 학습 시스템으로 구몬 또한 한국에서 고속 성장할 수 있었다."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건가.

"아이디어는 직원들이 냈고 결정은 내가 했다. 대교수학, 신수학이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내가 눈높이수학을 선택했다. 임원들은 막 반대하더라. 학부모는 눈높이보다 훨씬 높은 걸 요구한다면서(웃음).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키를 낮춘 선생님'에 착안한 광고 시안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나는 우리 제품으로 공부하면 성적이 쑥쑥 올라간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교육학을 전공한 분도 아닌데 그런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경험이 쌓여 철학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늦깎이로 했지만 내가 교육학 석사다.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96년 '대교그룹'으로 출발하면서 2010년에 50대 기업 안에 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1년 뒤 IMF 외환 위기가 닥쳤다.

"그만큼 내가 경제를 몰랐던 거다. 93년에 대교방송 시작하고, 95년에 엑스피아월드를 하고, 대교유통, 대교컴퓨터까지 벌여놨으니. 기업이 좀 된다 싶으면 문어발식으로 확장해가는 한국 기업의 속성을 나도 따라갔던 거지. 대교의 눈높이 신화를 과대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전문 경영인이라고 할 수 없다."

―실패의 책임을 지고 2001년부터 5년간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기업 오너로서 지탄받고 책임지는 게 마땅했다. 본사에서 나와 역삼동에 사무실 한 칸 얻어 셋방살이를 시작했지. 대신 연세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낸 송자 교수를 삼고초려해 전문 경영인으로 모셔왔다. 송자 총장은 역대 대학총장 중 비즈니스 감각이 가장 뛰어난 분이었다."

敎學相長, 체면 따위는 버려라

―대교는 세금 탈루, 비자금 조성을 하지 않는 깨끗한 기업으로도 이름나 있다.

"친구들이 '너는 콧구멍이 두 개라서 살았지 하나였으면 숨막혀 죽었을 것'이라고 농담을 한다. 답답할 만큼 원리원칙을 지키고 곧이곧대로만 사업한다고 흉을 본다. 물론 쉽게 돈 벌 수 있는 크고 작은 유혹도 많았지만 명색이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교육 사업인데 거짓말하거나 경쟁자와 이전투구를 하면 안 된다는 게 내 원칙이었다."

―유혹이란 게 이를테면 어떤 것인가.

"우리 교재 영업권을 받아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영업권 주고 우리는 돈만 받으면 되니 가만히 앉아 떼돈을 버는 거다. 그 쉬운 길을 놔두고 아이들과, 교사들과 씨름하면서 어렵게 온 건, 교육기업의 본분과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이 없는 일은 하기 싫었다."

―흔히 자수성가한 창업주는 독단과 오만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틈틈이 공부를 하러 다녔다. 12개 대학원의 특수 과정을 다니면서 노동, 문화, 환경, 법무 분야까지 공부했지. 대학원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자체가 거대한 교과서다. 교학상장(敎學相長), 배우고 가르치며 서로 같이 성장한다. 오너라고 해서 내가 조직에서 가진 파워, 권위만 생각하면 오만에 빠진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이 절대 필요하다. 요즘엔 집사람이 핀잔을 줄 만큼 드라마도 즐겨본다.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대중의 심리를 알아야 하니까. 시장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만의 특화된 영역을 창조해낼 수 없다."

―배드민턴 마니아가 된 게 어머니 덕분이라고 하더라. 현재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서울에 일가친척도 없어 어머니가 많이 외로우셨다. 집 앞 공터에 배드민턴장을 만들고 어머니와 배드민턴을 쳤다. 그 덕에 동네 친구분들도 사귀시고 건강도 좋아지시더라. 구순을 바라보시는 지금도 배드민턴을 치신다. 누가 나더러 효자라는데, 진짜 효자는 배드민턴이다.(웃음)"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빌 게이츠와 함께 배드민턴 경기를 관람했던 얘기가 책에 적혀 있더라.

"성공하는 사람에겐 놀라운 집중력이 있다는 걸 빌 게이츠를 보고 새삼 느꼈다. 부인 멜린다가 옆에서 말을 거는데도 경기 내내 선수들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더라.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라 좋았다."

―저출산으로 학습지 시장의 성장 동력이 현저히 약해지고 있다. 돌파구가 있는지.

"학습지는 어린이, 청소년만 본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 한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우리도 평생 교육이 대세가 됐다. 은퇴 후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더 살아가려면 공부해야 한다. 우리 삶에서 교육은 버릴 수 없는 영역이다. 심지어 죽음에 대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시장은 좁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블루오션이다."

―오일 쇼크로 취업문이 닫혔던 20대를 경험했다. 오늘의 20대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 같다.

"유교문화의 사농공상(士農工商)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손톱 밑에 흙 묻히지 않겠다, 때 안 끼게 하겠다, 앉아서 펜대만 돌리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기회가 온다. 일단 자기 삶을 돌아보고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한 뒤 공격적인 키 하나를 들고 준비해라. 남 잘하는 것만 보면 열패감만 쌓일 뿐이다. 체면 따위는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