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 오후 6시 반 서울바로크챔버홀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감독 김민과 서울바로크합주단의 공연은 잊혀진 'DMZ의 용사(勇士)' 유호철(柳浩哲·70) 예비역 소령을 위해 그의 보성고 50회 동창이 마련한 것이다.
유호철의 동창으로 원로 언론인 홍종인씨의 아들인 홍순구는 여러 해 전부터 친구를 위한 행사를 권했다. 그럴 때마다 유호철은 "나보다 더 고생하는 전우들이 많다"며 사양하다 최근에야 '젊은이들에게 이런 선배가 있었음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뜻을 굽혔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등 친구들이 성금을 모았다. 음악회 직전 그와 그의 부하들에게 '우정의 훈장'이 수여된다. 뜻하지 않은 잔치상에 더 감동한 것은 유호철이 지휘하던 1사단 수색중대원들이었다. 부하들은 상사를 위해 소령 계급장이 달린 빳빳한 군복을 선물했다. 그 자랑스러운 군복을 바라보는 노병(老兵)의 눈가가 어느덧 촉촉해졌다.
나라 위해 헌신한 '호국의 별'은 그동안 연금 외에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41년 세월을 삭혔다. 1971년 6월 29일 오전 10시 사단장의 출동 명령을 받았을 때 유호철 대위는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북한 공비가 나타난 곳은 임진강 하구(河口)였다.
출동 열흘 전 사단 수색중대장 유 대위는 그곳에 정찰을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인천 앞바다의 조수(潮水) 간만 차가 만든 갯벌의 갈대숲을 헤치자 북한제 담뱃갑, 단무지 조각, 비닐봉지 등 침투 흔적이 여럿 발견된 것이다.
유 대위는 수색팀을 '인(人)'자 대형으로 꾸렸다. 군견(軍犬)과 군견병, 바로 뒤에 자기가 진두지휘한 것이다. 순간 적탄(敵彈)이 불을 뿜었다. 송아지만 한 셰퍼드가 벌집처럼 변했다. "살려달라"는 군견병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때 유 대위는 몸이 쫙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다리에 세 발, 왼쪽 다리에 두 발이 명중한 것이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간첩과 유 대위 사이 거리는 6.5m에 불과했다. 그는 공비 3명의 집중 타격목표였다.
다시 귀밑에 한 발을 맞은 유 대위를 세 명의 구세주(救世主)가 살렸다. 낮은 포복으로 다가와 그를 구출한 분대장 이종태 하사, 잘려나갈 뻔한 두 다리를 뼈 이식 수술로 살려낸 김신걸 대위, 요독증(尿毒症)과 골수염과 급성간염에 시달리며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용기를 북돋워준 김필달 중령이었다.
전선(戰線)을 지키던 유 대위는 1974년 10월 병원 문을 나섰다. 육사 20기의 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양쪽에 목발을 짚은 초라한 신세였다. 3년 4개월간 그가 받은 전신 수술만 12회가 됐다.
목발 짚은 용사(勇士)가 맛본 사회는 차가웠다. 나라가 겨우 배려해준 자리는 한국전력 예비군중대 서무(庶務)였다. 중대장이 대위니 아무리 성치 못한 처지였지만 소령으로 예편한 그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자존심이 상했다.
두 달 만에 고려합섬 안전관리자로 자리를 옮겨 8년이나 근무하니 앞날이 걱정됐다. "이대로 가다가 오십줄에 들어서면…"이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자 그는 틈틈이 배운 컴퓨터 실력을 살려 정일시스템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전망이 있다 싶어 만든 회사였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끼니 잇는 게 두려운 나날이 계속됐다. 8년 만에 회사를 접고 그는 기흥물산이란 회사에 재취업을 했고, 다시 2000년 지금의 ANN이라는 방산(防産)물자 무역업을 시작했다.
국방의 최일선에서 희생한 그는 성치 못한 몸으로 투병(鬪病)하며 가난과 두 자녀 양육을 위해 싸웠다. 그렇게 악전고투하는 동안 조국이 그에게 해준 것은 몇 푼 안 되는 연금뿐이었다. 훈장은커녕 별다른 관심도 없었다. 그의 삶에서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단어는 딱 한 번 실현됐을 뿐이다. 아내 김경숙을 만난 것이다. 병마(病魔)와 싸우고 있을 때 이화여대 미대 3학년이던 그녀는 독일 간호사로 가려고 수도통합병원에서 연수받던 중이었다.
"누운 채 손 내밀어 때늦은 선물 등속을 받아드는 유 소령님의 눈에는 그렇게 봐서 그런지 쓸쓸함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내가 유 소령님을 만난 것은…." 이렇게 시작되는 김경숙의 글 '작은 별'이 샘터 1973년 3월호에 실려있다.
음악회 며칠 전 모인 친구들은 보성 50회의 상징이 '기러기'라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선두에 선 기러기가 포수의 총에 맞아 쓰러지면 뒤따르던 기러기 두 마리가 그를 쫓아갑니다. 그가 일어설 때까지 동료들이 그를 끝까지 돌보지요. 우리도 호철이를 그렇게 지킬 겁니다."
앞면에 그가 그렇게 지키려던 한반도의 모습이, 뒷면에 보성고 마크가 들어간 훈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두 자녀가 비겁한 조국을 원망하지 않느냐"고. 노병은 머리를 저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라를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