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2011 대한민국 로스쿨 취업 박람회’는 로스쿨 학생들을 위한 최초의 취업박람회였다. 23개의 공공기관과 대기업, 법무법인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 로스쿨 학생들을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줄을 서면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경기도 공무원 1명 뽑을 때 로스쿨 출신 19명 지원

수년 전부터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으로 늘면서 '변호사=출세'란 등식은 깨졌다. 사법연수원을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백수 변호사'가 점점 늘어났고 변호사 초임도 대폭 깎였다. 더욱이 올해는 사시 합격자 707명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 졸업생 1451명까지 변호사시험(변시)을 통해 법률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로스쿨 출신은 출발부터 처절한 '구직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무급도 좋습니다 일단 써보세요"

지방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난 3월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김모씨. 작년 말부터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나 지금도 실업자 신세다. 대형로펌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여러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지만 떨어졌다는 '회신'조차 받지 못했다. 김씨는 "과장·대리가 아니라 일반사원도 좋다고 했지만, 인사 담당 임원은 '나중에 연락하겠다'더니 아무 소식이 없다"면서 "다른 로스쿨 동기들도 경력은커녕 신입사원으로 뽑아만 줘도 감지덕지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정모 변호사는 최근 로스쿨 변호사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1년간 일을 시켜보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급여를 줘도 좋다는 것. 정 변호사는 "그의 제안을 검토해 봤으나, 채용 계획이 없는 데다 나중에 더 어색해질 것 같아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고 했다.

로스쿨 변호사들은 변시 합격 후 법률사무 종사기관에서 6개월간 의무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취직을 못 한 로스쿨 변호사의 경우 최소 6개월이라도 로펌에서 무급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국민권익위원회가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상대로 6급 공무원을 채용하려 하자 법조계가 '법조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했으나, 이젠 로스쿨 변호사에게 '법조인 체면'을 강요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얼마 전 경기도 공무원 1명을 뽑을 때 변호사 21명이 지원을 했는데 사법연수원 출신이 2명이었고 로스쿨 출신이 19명이었다.

당초 법조계에선 로스쿨 변호사에 대한 채용과 처우를 놓고 고민을 해왔다. 로스쿨 출신이 사시 출신보다 자질이 다소 부족할 것으로 봤고 그에 따라 연봉도 사시 출신의 70~80% 선에서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대부분의 법무법인과 변호사 사무실들은 로스쿨 변호사에 대한 급여를 연수원 출신보다 낮게 책정하고 있다. 연수원 수료생에게 연봉 5000만원을 준다면 로스쿨 출신에게는 4000만원을 주는 식이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경우 10년 전만 해도 초임 변호사 연봉은 8000만~1억원에 달했으나 4, 5년 전부터 5000만~6000만원 선으로 내려갔다. 올해엔 로스쿨 변호사에게 대기업 신입사원보다 적은 연봉 3000만원을 주는 법률사무소까지 있는 등 변호사 초임은 10년 사이 반 토막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의 경우 고소장 쓰는 능력부터 사시 출신보다 떨어지는 등 당장 써먹을 곳이 없다"면서 "게다가 2, 3년 일 가르치고 나면 개업을 하거나 다른 곳으로 갈 우려가 커 채용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사건 부족으로 '고참 사무장'까지 내보내는 마당에 싸움 한 번 안 해본 '젊은 장교'를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 일반직 7급 직원 공채 필기시험에서 로스쿨 출신 전원이 탈락한 것도 자질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로스쿨이 졸업생 취업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기업 등을 상대로 구직 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그 효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1기 로스쿨 졸업생의 평균 취업률이 50%를 밑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로스쿨 낭인'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소수는 화려한 출발

그러나 모든 로스쿨 변호사들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출신학교와 경력, 인맥 등 소위 '스펙'이 좋은 상위 10~20%가량의 로스쿨 출신은 선망의 직장에 안착했다. 예비 판검사가 되거나 대형로펌에 들어간 변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김앤장이나 세종, 화우, 광장 등 대형 로펌들은 올해 로스쿨 졸업생 100명가량을 신규 변호사로 채용했다. 당초 로스쿨 출신에게 사시 출신의 80% 연봉을 계획했던 이 로펌들은 최근 로스쿨 변호사를 보는 시각이 한층 좋아졌다고 한다.

대형로펌 관계자는 "처음에 걱정했으나 몇 달간 일을 시켜보니 사법연수원 출신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일부 로스쿨 출신은 장래성이 훨씬 나아 보였다"고 했다. 다른 로펌 관계자도 "로스쿨 출신 중에는 사법연수원 출신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의사·공무원·언론인·연구원 등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나 쟁쟁한 해외 유학파들이 있다"면서 "이들이 사시 출신보다 못하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래서 대우도 똑같이 해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형로펌들은 향후 변호사 인력이 로스쿨을 통해서만 충원된다는 점을 감안해 '인재 선점'을 위한 이미지 쌓기 차원에서 로스쿨 출신을 '박대'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로스쿨 졸업생을 상대로 100명을 선발한 로클럭(재판연구원) 중에서도 호평받는 인재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의 한 로클럭은 하루 만에 중남미의 파나마 법전을 검토하고 실무자료를 번역해 파나마 소속 선박이 연루된 사건에 대한 심리방향을 조기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로클럭은 2년 근무 뒤에 별도로 1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쌓으면 판사로 임용될 수 있다.

대형로펌 관계자는 "사법연수원 출신들은 능력면에서 개별 편차가 적었다"면서 "그러나 로스쿨 출신은 자질이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출발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소수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난관 많은 로스쿨 제도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업계의 적자생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으나, 문제는 변호사 능력 판단 기준이 사법시험에 비해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시 제도 아래에선 시험 성적에 따라 판검사가 되고 대형 로펌에도 들어갔으나, 로스쿨 출신에겐 그런 점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 시험이 있지만 성적을 공개하지 않을뿐더러 그 점수로 진로를 결정한다면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전국 로스쿨이 순식간에 '고시원'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렇다 보니 로스쿨 졸업생의 출신 대학은 물론 가정환경까지 그들의 진로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로펌 사이에선 서울대 학부를 나온 서울대 로스쿨 출신을 '1순위'로 치며 그다음으로 '서울대(학부)-연·고대(로스쿨)', '연·고대(학부)-서울대(로스쿨)' 출신 등으로 로스쿨 출신을 서열화한다는 것이다. 대형로펌이 올해 뽑은 로스쿨 변호사들의 출신 대학과 로스쿨의 조합을 살펴보면 '서울대와 연·고대' 출신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펌 관계자는 "주요 로펌이 선발한 100명의 변호사 중에 지방대를 나온 지방대 로스쿨 출신은 2명 정도로 파악됐다"고 했다. 또 일부 로펌에선 로스쿨 변호사의 '집안'도 채용 심사에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로펌 입장에선 정·관계 고위 인사나 재계·금융계의 유력 인사를 부모로 둔 지원자에게 더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으냐"면서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판검사 임용 과정에도 이런 '연줄'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부정입학 사건에도 전 국민이 분노하는 우리 정서상 판검사 임용 과정에 '잡음'이 생긴다면 그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법무부는 올해 사시 출신 61명과 로스쿨 출신 42명을 검사로 뽑았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로스쿨 출신 중에서 검사를 충원하게 된다.

서울변협 관계자는 "대법원과 법무부가 로클럭과 신규 검사를 임명할 때 직무·실무역량 평가 등 객관성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모든 로스쿨 출신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했는지 선발 기준이 객관적이었는지 등 향후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로스쿨 제도에 맞는 객관적 판검사 임용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한편 로스쿨 제도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도입이 검토되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법률 서비스 환경이 좋아졌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가난한 수재'들의 신분 상승 통로였던 사법시험을 없애고 비싼 대학원(로스쿨)을 만들었다는 지적과 함께 부(富)의 대물림 현상을 가속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로스쿨 체제에선 더는 '노무현' 같은 성공 신화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