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2차 총선 개표 결과 긴축안에 찬성하는 신민주당의 승리가 확인된 17일(현지 시각) 아테네 시민의 반응은 지지 성향에 따라 엇갈렸다. 회사원 스키아(38)씨는 "신민주당이 제1당이 되지 않았다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퇴출되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이제는 유럽연합(EU)과 재협상을 통해 긴축을 완화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시리자를 지지하는 상점 직원 나탈리아(29)씨는 "내 주위 사람은 대부분 시리자 지지였는데 선거 결과가 매우 당혹스럽다"며 "긴축 때문에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테네 시민의 반응은 신민주당이 비록 선거에선 승리했지만 앞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재협상을 통해 지긋지긋한 긴축을 좀 완화시켜 주길 바라는 국민의 열망과 이와 반대로 긴축 약속을 지킬 것을 바라는 유로존 국가들의 기대 속에서 어려운 줄다리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긴축 완화 요구 만족시킬까
유로존 국가들은 일단 그리스의 재총선 결과를 환영하고 있다.
17일 선거 결과가 나오자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그리스 국민의 역경을 이겨내는 힘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며 "그리스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민주당 대표에게 축하전화를 걸어 "그리스는 유로존의 한 국가로 계속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말과는 별도로 가시가 숨어 있는 견제의 성명도 나왔다. 독일 외무장관은 "재정 긴축 이행 시한에 대한 논의 등은 가능하지만 구제금융 자체의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2014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1%에 맞춰야 하는 재정 적자 목표 달성 시한을 늘려줄 순 있지만 다른 조건은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EU는 한편에선 구제금융 금리 인하와 상환 시한 연장 등을 고려 중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그리스 국민이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2월 2차 구제금융이 승인되면서 그리스는 전 직종의 최저임금을 22% 삭감했고, 올해 연금도 총 3억3000만유로를 깎기로 했다. 개인별 연금이 15%씩 삭감되는 수준이다. 이 외에 공공 부문 인력을 2015년까지 15만명 감축하고, 의료 부문 지출을 종전 GDP 대비 1.9%에서 1.3%로 축소키로 했다. 이런 강력한 긴축 때문에 그리스 국민의 불만은 어느 때보다 높고, 이런 정서 위에서 시리자가 국내적으로 지지세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신민당이 이끄는 새로운 연정은 긴축 이행 약속을 최대한 이행해야 한다는 EU·독일과 이를 최대한 완화해야 한다는 그리스 국민 사이에 끼여 있다. 새 정부는 서둘러서 EU로부터 완화된 긴축안을 끌어내야 한다. 약속된 구제금융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그리스는 이르면 한 달 내 연금과 공무원 봉급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것으로 우려된다. 하지만 더욱 강력한 야당으로 부상한 시리자는 "야당으로서 정부가 주요 사안에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대(對)정부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스페인·이탈리아 문제도 여전
국제금융계는 그리스 재총선 결과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 부실로 국채 금리가 국가 부도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7%를 넘나드는 스페인은 최대 1000억유로(약 146조원)의 구제금융 결정에도 금리가 내려가지 않고 있다. 금리가 6%를 넘어선 이탈리아도 구제금융 신청설이 나돌고 있다. 두 달 전 71%를 기록한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의 지지율은 최근 34%로 반 토막 났다. 만일 그리스가 긴축 완화 협상을 신속히 처리하지 못하고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킬 경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은행에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사태)이 발생하는 등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G20, IMF 재원 확충 등 논의 예정
시장에선 18~19일 멕시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그랜드 솔루션(대형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회의에선 은행 부실 위기에서 예금자들을 보호할 유럽 은행동맹(Banking Union) 구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론은 28~29일 EU 정상회의로 넘길 공산이 크다. 지난 4월 4300억달러 기금을 확충키로 한 국제통화기금(IMF) 재원 확충에 중국·인도 등 신흥 경제국들이 돈을 얼마나 내놓을지 여부도 주목거리다. 만약 신흥 경제국들이 '총알'을 적극적으로 늘려주겠다고 나선다면 국제 금융시장엔 좋은 시그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