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수·전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수원장

청년 시절, 형님은 맹호부대의 월남전 파병 용사였다. 나는 그 덕으로 중학교에 다녔다. 군 제대 후에도 형님은 외국 배를 타기도 하고, 사업도 하는 등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작년 이때쯤 병이 났다. 우울증,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씩씩하던 분이 우울증이라니, 더 놀란 것은 평소 통 안 하던 월남전 이야기를 병원에서 중얼거린다는 것이다.

"총격전이 벌어졌다. 순간, 바로 앞에 불쑥 적병이 나타났다. 서로 놀라 동시에 갈겼다. 상대는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서, 원망의 눈초리로 빤히 쳐다보며 죽어갔다." 형님은 이 일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던 분이 하필 왜 병중에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그렇다면 혹여 그 일이 지금의 형님에게 어떤 아픈 악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형님의 그간 삶은 너무나 씩씩하고 활기차 보였다. 그렇게 믿고 싶으면서도 내 속은 편치 않았다. 병세는 점차 악화되어 최근에 이르렀다.

지난 주말, 형님의 첫 딸 결혼식이 열렸다. 모두가 걱정이었다. 허나 놀랍게도 휠체어에 앉아 있던 형님이 일어섰다. 당신께서 직접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입장한다는 것이었다. 웨딩 행진을 하려고 선 것이다. 행진곡이 시작되자 한 발을 힘겹게 뗀다. 뒤뚱뒤뚱 걸어 마침내 딸을 건네주는 순간, 빡빡 깎은 머리와 퉁퉁 부은 얼굴엔 땀이 범벅이었다. 해낸 것이다. 장내는 훌쩍이며 울던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큰 박수로 환호했다.

거보를 내디딘 것이다. 자랑스러웠다. 형님, 그까짓 우울증과 종양, 팍 날려 버리소. 아픈 기억은 다 잊고, 다시 한 번 일어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