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뒤에 작은 프랜차이즈 도시락 가게가 문을 열었다. 언뜻 보기엔 여느 도시락 매장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명란젓·매실장아찌·황태채무침 등 갖가지 밑반찬이 곱게 담긴 도시락을 배달하는 직원 중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층이 섞여 있었다.

가게의 더 큰 특징은 수익금 전액을 한국소년보호협회에 기부한다는 점이다. 기부금은 소년원 출신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8개 자율생활관 운영자금과 장학금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불우 청소년들이 희망을 갖도록 돕는다는 의미에서 가게 별칭은 '희망나눔가게'라고 붙여졌다.

매달 본도시락 충무로점 수익금 전액을 불우 청소년들에게 기부하기로 한 김철호(왼쪽) 본아이에프 대표이사가 도시락을 들고 있다. 그의 이 결정에 큰 영향을 준 지인 이중명 에머슨퍼시픽그룹 회장은 배달 봉사를 하며 돕겠다고 했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본죽' '본비빔밥' '본국수대청' '본도시락' 등 캐주얼 한식 프랜차이즈 전문점을 이끄는 기업 '본아이에프'의 김철호(49) 대표이사. 그는 23번째 본도시락 매장인 충무로 직영점을 열면서 이곳을 희망나눔가게 1호점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본죽의 사회공헌재단 '본사랑재단'을 통해 꾸준히 기부를 해 왔지만, 김 대표이사가 이번에 특별히 소년원 출신 청소년들을 돕겠다고 생각한 데는 오랜 지인(知人)인 이중명(69)에머슨퍼시픽그룹 회장의 영향이 컸다.

지난 2월 법무부 산하 '한국소년보호협회' 회장으로 임명된 이중명 회장은 지난 3월 일주일간 소년원에 머무는 체험을 했다. 네 살 때 재혼한 어머니로부터 수시로 폭행당하다가 삶을 비관한 나머지 혼자 여관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방안에 불을 질러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소녀, 가족들 관심을 받지 못해 본드 중독이 된 소년 등 어린 나이에 희망을 포기한 청소년들을 만났다.

이 회장에게서 이런 청소년들 사연을 전해 들은 김 대표이사는 자신부터 나서서 청소년들을 위한 작은 버팀목이 돼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때 사업에 실패하고 절망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주변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제가 누군가의 희망이 돼야 할 차례라 생각했죠."

본도시락 가맹점 평균 하루 수익이 60만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매달 한국소년보호협회에 기부하게 되는 돈은 1800만원 선. 기부액을 늘리기 위해 본사나 인근 직영점에 들어 오는 단체주문을 충무로점으로 몰아줄 계획이다.

김 대표이사는 좋은 일을 하는 김에 파트타임 배달 직원으로 60~70대 은퇴자를 고용해 고령층 일자리 창출도 함께하기로 했다. 마침 주변 빌딩에 입주한 사무실에서 주문이 많아 노인들이 배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중명 회장도 친구와 과거 자신의 회사 직원들을 배달 직원으로 알선해 줬다. 이 회장도 자주 매장을 방문해 파트타임 배달을 하겠다고 했다.

현재 희망나눔가게 직원 9명 중 60대 이상은 3명. 양재호(69)씨는 "하루 6시간 정도 일하기로 했는데, 집에서 노는 것보다 보람도 있고 뱃살도 뺄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웃었다. 희망나눔가게는 이미 서울시 노인복지센터와 인턴십 계약을 체결해 앞으로도 노인 파트타임 인력을 계속 늘릴 계획이다. 김 대표이사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통해 기부를 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며 "앞으로 이런 희망나눔가게를 2호점, 3호점으로 계속 늘리겠다"고 했다.

이날 희망나눔가게를 찾아 배달 봉사를 한 이 회장은 "소년원 아이들은 대개 사랑에 목 말라 있다.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품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