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 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 청문회에 교수가 증인으로 나왔다. 의장이 "선생님, 당신은 몇 시간 가르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교수가 "8시간"이라고 대답하자, 의장은 "그것 좋아요. 나는 전부터 하루 8시간 노동의 제창자이지요"라고 말했다.

하버드 문리대학장을 지낸 경제학자 헨리 로조프스키가 '대학 구성원들을 위한 설명서'라는 책에서 소개한 일화다. 로조프스키는 이 책의 '교수' 편에 다른 직업에는 없는 교수의 특권들을 모아 놓았다. 그에 따르면 교수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다. 강의 부담은 1주일에 6~12시간 정도이고, 수업을 하는 기간은 방학을 빼면 1년에 7~8개월 정도다. 출근부도 없고 괴롭히는 상사(上司)도 없다. 학회 참가 명분으로 세계 각국을 두루 여행할 수 있다. 7년마다 1년씩 주어지는 유급 안식년(安息年)은 교수 아닌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기준 근무연수와 연구실적을 채우면 종신재직권(테뉴어)을 받아 실직(失職) 걱정 없는 평생교수가 된다.

로조프스키가 10여년 전에 이 책을 쓸 때 한국 사정을 좀 알았더라면 교수의 특권에 '휴강(休講)' 항목을 하나 더 넣었을지 모른다. 시도 때도 없는 휴강은 한국 대학의 유서깊은 전통이다. 데모한다고 휴강, 학기초라고 휴강, MT 간다고 휴강, 축제 한다고 휴강, 시험기간이라고 휴강, 핑계는 무궁무진했다. 교수가 아무 예고 없이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아도 문제삼는 학생이 없었다. "최고의 명강의는 휴강"이라며 휴강을 낭만 비슷하게 여기는 풍조까지 있었다.

이런 추억을 가진 사람이 요즘 대학을 가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휴강 얘기를 꺼냈다간 외계인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교수들은 웬만하면 휴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학회나 외부행사로 수업을 못할 것 같으면 학교에 보강(補講)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보강을 하려면 학생들과 상의해서 날짜와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 없을 때는 보강을 나눠서 하든지 새벽이나 토요일에 한다. 대학당국도 학사일정을 발표할 때 법정공휴일이나 임시공휴일, 개교기념일로 결강하는 과목에 대해 보강 일정을 함께 발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교수와 학교를 이렇게 바꾼 건 학생들이다. 이제 대학생들은 더이상 휴강을 낭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서울의 한 사립대가 학생들의 강의평가 글 18만건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교수가 휴강 자주 하고, 지각하고, 강의 일찍 끝내는 교수다. 이런 흐름을 더 가속시키는 것이 등록금 부담과 취업난이다. 어느 대학생은 서울시 무료법률상담코너에 "비싼 등록금을 냈는데 휴강하고 보강도 안 해준 교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글을 올렸다. 인터넷에는 "휴강으로 손해 본 수업 1시간당 수업료를 2만원으로 계산해서 학교에 부당이득 반환 집단소송을 내자"는 주장들이 돌아다닌다.

뿌리깊은 휴강의 악습(惡習)이 어느 시점에 꺾이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2004년 열린우리당 이상락 의원이 휴강으로 수업결손 시 수업료를 환불토록 하는 법안을 내면서 "대학 휴강률이 3분의 1을 넘는다"고 지적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때까지는 휴강 관행이 여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교수들은 확실히 예전만큼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강의 준비하랴 논문 쓰랴, 교수 노릇 하기 갈수록 힘들다"는 하소연이 부쩍 늘었다. 그런 와중에 국제 대학평가에서 한국 대학들의 순위와 평판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 교수가 고달파지니 대학 경쟁력이 올라가는 형국이다. 그러니 '휴강 낭만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