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은 예상보다 빨랐다. 시장에선 스페인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와 미국 월가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은행 자산 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가 모두 마무리되는 오는 21일 이후에나 행동을 취할 것으로 봤다.
스페인이 예상을 뒤엎고 조기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그리스 재총선(17일)을 앞두고 그리스발(發) 금융위기가 스페인을 거쳐 유로존 전체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유로존 정책 당국이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만일 총선 결과 그리스가 연정 구성에 다시 실패하거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좌파 정권이 집권할 경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고, 여기에 스페인 은행 위기까지 맞물릴 경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페인에서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확산되면서 스페인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IMF는 스페인 금융시스템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당초 예정했던 11일보다 사흘 앞당겨 8일 발표했다. IMF는 77쪽짜리 보고서에서 스페인 은행 지원을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를 370억유로로 추산하면서 "스페인 은행권이 현대사에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7일 스페인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세 단계 강등했다.
EU는 스페인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구제금융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스페인이 구제금융에 반대하자 긴축 조건을 달지 않는 '부드러운 구제금융'을 제공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했고, 이것을 스페인이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소식을 접한 그리스 국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그리스 기업인은 "위험지대에 함께 있던 스페인이 혼자 도망가 버린 셈이다. (그리스에서) 뱅크런 현상이 더 심해지고, 은행의 자금난이 심화돼 돈줄이 더 마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시민은 "아직 이탈리아가 남아 있으니 유로존에서 그리스를 버릴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