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개월만 기다려 보십시오. 서울에서 주폭 1000명만 잡아들이면, 세상이 확 달라질 겁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주폭 잡는 사나이'다. 지난 5월 부임한 그의 일성(一聲)은 '주폭 척결'이었다. 서울청 산하 31개 경찰서에 '주폭전담팀'을 만들고, 시내 곳곳에 "주폭을 척결합시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이도 바로 김 청장이다. 김 청장은 '왜 주폭인가'라는 질문에, "서민이 서민을 괴롭히는 범죄가 바로 주폭이며, 대한민국 국격(國格)을 위해서라도 주폭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폭 척결에 나선 계기는.

"사실 나도 촌놈이다. 어릴 때 동네마다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주폭 몇 명씩은 다 있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이유만 있는 게 아니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법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고, 그렇게 됐을 경우에 사회적으로는 약자 순으로 피해를 보게 돼 있다.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등이다. 그런데 공권력이 무너지는 지표인 공무집행방해사범을 보니 전부 술 먹은 놈들이었다. 그래서 주폭 척결을 생각한 것이다. 총을 찬 경찰에게도 행패를 부리는 정도라면 서민들에게는 얼마나 더 고약하게 하겠는가.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자기도 서민이면서 다른 서민을 괴롭히는 것이 바로 주폭들이다. '치안복지'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8일 오후 집무실에서 만난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주폭 척결은 대한민국 국격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주폭이란 말이 어떻게 나왔나.

"충북 경찰청장 때 현장에서 보니까 주폭들로 인한 피해가 생각보다 휠씬 심각하더라. 그런데 왜 사람들이 신고를 하지 않을까. 바로 보복이 두렵고,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신고해봤자 풀려나고, 들어가봤자 한 달도 안 돼 나와서 '당신 왜 나를 신고했나'고 겁주는데 누가 하겠는가. 조폭도 마찬가지다. 보복할까봐 조폭의 피해를 숨긴다. 그래서 생각한 말이 주폭이다. 조직의 힘을 빌려서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조폭이라면, 술의 힘을 빌려 상습적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이 바로 주폭이다."

―왜 그동안 경찰은 주폭을 처리 못했다고 보나.

"주폭은 사실 단일 사건으로 보면 기껏해야 술 먹고 소리치고, 기물 파손이나 사람을 좀 때린 정도다. 불구속 기소도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의 여죄를 찾아보면 대부분 상습적이다.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난 경찰 후배들에게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서민들의 피눈물이 나고 있고, 가슴을 치는 일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주폭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 주폭을 처리 못한 것은 경찰의 직무유기다. 경찰에서 강력 범죄 해결하면 표창받고 승진할 수 있지만 주폭 해결은 그렇지 못한 것도 문제다. 경찰이 스스로 잔치에 만족하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했나.

"술 취해 한두 번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상습적이라면 다른 차원의 얘기다. 서민 피해자들은 대부분 보복이 두려워 신고도 못한다. 경찰이 스스로 피해자로 예상되는 곳에 찾아가서 주폭들의 피해 사례를 모으고 수사해야 한다. 주폭 리스트가 그래서 필요하다. 이런 데이터가 있으면 나중에 단순 폭력으로 들어온 주폭을 가중 처벌할 근거가 생긴다. 피해자들에게 직접 와서 신고하라면 대부분 서민들인 피해자들은 생계 때문에, 때로는 정말 보복이 두려워 못 나선다. 우리가 동네를 돌며 이런 현상을 찾아내야 한다."

―주폭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주폭들이 싱가포르에 있다면 그렇게 못할 것이다. 태형이 무서워서라도.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 경찰도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 주폭 구속영장 기각하는 법원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취객에게 경찰이 얻어터지다니, G20 국가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법과 제도 보완되면 더 좋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도 엄격하게 적용하면 된다. 술 먹은 게 벼슬인 세상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주폭들이 이제는 사고 치면 걸린다는 걸 인식하게 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회 여론도 중요하다. 조선일보의 최근 기획 시리즈도 진심으로 고맙다. 주폭의 문제점을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충북에 있을 때 어느 아파트 7층에 사는 주민이 8층 거주자가 일주일에 한 번은 술 먹고 들어와 싸움을 벌여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래서 '충북경찰청에서 주폭을 강력히 척결하는데, 신고하면 바로 구속된다'고 했더니, 8층 주민은 그 뒤로 음주 소란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도 서민들은 술 한잔으로 애환을 달랜다고 하는데.

"행패 부리는 정도가 약한 주폭도 다스려야 한다고 본다. 주폭으로부터 당하는 사람은 엄청난 손해 본다. 식당에서 행패 부리면 당일 손님들 다 나가고, 다시 안 오는 경우도 생긴다. '술 왜 먹어'라는 질문에 일반인들의 모범 정답은 '가슴을 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주폭들은 '뚜껑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술을 적당히 먹는 걸 막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 주폭이 사라질 수 있을까.

"충북에서 주폭 척결에 나설 때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두고봐라. 7~8개월만 지나면 달라질 것이다. 충북에서 주폭 100명 잡으니 엄청 좋아졌다. 서울도 주폭 1000명 정도 구속되면 그렇게 된다. 주폭 1명이 일주일에 서너 건씩 사고 친다고 생각해봐라. 연간 2만여건의 음주 행패가 없어지는 것이다. 술 때문에 우리 사회가 치르는 비용이 얼마나 큰가?"

☞김용판 청장은… 상업적으로 이용될까봐 '주폭'에 상표권 특허 등록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충북청장 시절인 2010년 '주폭'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김 청장은 자신이 만든 신조어 '주폭'이 자칫 상업적으로 이용되며 희화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2011년 4월 '주폭'이란 단어에 대한 상표권·서비스권을 특허청에 출원하고, 올 3월 특허를 받았다. '주폭과의 전쟁'에 대한 성과로 충북청은 작년 9월 기획재정부 주최 국가생산성대상에서 종합부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