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피해자 A씨
지인 소개로 만난 오씨가 "선물 투자로 큰 돈 벌어…
강의 다니다 스카우트 돼…청와대 비자금 관리한다"

3000만원 보내봤더니
7일만에 60만원 이자 받아, 친·인척 돈까지 13억 투자…
다 날리고 쫓겨나 신용불량

회사원 B씨
직장동료 돈 모아 전달, 피해금액 30억원 웃돌아
집 넘어가고 회사에서 해고, 분식점 '알바' 신세로…

대선 끝나면 100억 배당?
"고소하면 못받는다" 협박 , 피해자 최소 50명
피해 금액 60~70억 달해

40대 주부가 '청와대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면서 거액의 투자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주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2동 인덕원 일대에 사는 주부, 회사원, 학부모, 은행원 등이 피해자로 그 수가 계속 불어나고 있으며 검찰도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청와대 비자금을 관리한다고?

영어학원 직원 A씨가 지인의 소개로 인덕원에서 오모씨를 만난 건 작년 1월이었다. A씨는 "신앙심이 깊어 보였고 말재주가 좋았으며, 상냥하고 쉽게 남과 친해지는 스타일이었다"고 오씨에 대한 첫인상을 말했다.

오씨는 당시 A씨에게 자신의 노트북컴퓨터를 보여주면서 선물(先物) 투자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면서 청와대 비자금을 관리하는 '서울사무실'에서 고급 정보를 받기 때문에 돈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오씨는 "IMF 이후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고 삼성증권의 요청으로 강연을 하게 됐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청와대 비자금 관리팀의 눈에 띄어 서울사무실에 스카우트됐다"고도 했다. 서울사무실은 강남구 삼성동에 있으며 장관의 부인이 '보스'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씨는 A씨에게 투자를 권했으나 주식 투자에 관심이 없던 A씨는 사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A씨는 주변의 지인들이 오씨에게 돈을 맡기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터라 오씨를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대단한 인물로 여겼다고 한다.

일주일 뒤 오씨는 A씨에게 한 달에 최소 3부(3%)나 10부의 이자를 주겠다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금전 거래를 하려는 오씨에게 믿음이 가진 않았으나 아이 넷을 키우는 주부가 설마 사기를 칠까 싶어 A씨는 500만원, 2000만원, 450만원 등 세 차례 걸쳐 2950만원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오씨는 A씨에게 510만원을 보내왔다. 오씨는 450만원은 빌렸던 돈을 돌려주는 것이고, 60만원은 2000만원에 대한 '3부 이자'라고 설명했다. 2000만원을 투자해 7일 만에 3% 이자를 챙긴 A씨는 그때만 해도 은인을 만난 줄 알았다고 했다.

오씨는 수일 뒤 다시 전화를 걸어와 돈을 보내달라고 했고 이제부턴 A씨가 나서서 자신은 물론 친·인척에게 연락해 돈을 모아 오씨에게 보내주었다. A씨의 부모와 자매는 물론 A씨가 근무하는 학원의 원장도 투자에 동참했다. 이렇게 A씨 측에서 오씨에게 전해진 돈은 순식간에 13억여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A씨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갈 땐 2~3개월만 쓴다고 했던 오씨가 원금 지급을 자꾸 미루는 것이었다. 오씨는 정치 일정 때문에 비자금 사무소에서 아직 돈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댔다고 한다. A씨가 독촉하면 오씨는 "여러 사람 돈을 끌어온 네가 더 답답하지. 돈 받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선거 때면 돈이 풀린다. 총선 전후에 모두 갚아주겠다'고 했던 오씨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A씨는 "오씨는 지금 올해 말 대선 때 돈을 갚는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더는 못 참아 고소를 하게 됐다"고 했다. 집에서 쫓겨난 A씨는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인덕원 일대 피해자 속출

문제는 A씨와 같은 피해자가 인덕원 일대에만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오씨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관할 지청이나 경찰에 접수된 고소장이 6건이나 되는 등 피해자가 최소 50명이 넘고 지금까지 집계된 피해금액만도 60억~7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오씨가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 등을 상대로도 비슷한 행각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 피해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회사원 B씨도 오씨를 만나 '패가망신'한 케이스였다. 그는 5년 이상 오씨와 금전 거래를 했고 피해금액이 3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직장 동료의 돈을 모아 오씨에게 전달했던 B씨는 회사에서 쫓겨났으며 집도 경매로 넘어갔고 지금은 분식점 '알바'로 일하고 있다.

식당 종업원 C씨의 경우엔 식당 사장에게 투자를 권유해 5000만원을 날리게 했다. C씨는 월급은커녕 무보수로 식당에서 일하면서 오씨 대신 사장에게 돈을 갚고 있다. 한 피해자는 "오씨에게 투자했던 사람 중엔 경찰관 부인과 사채업자도 있으나 평범한 주부들이 가장 많다"면서 "이혼당한 사람도 여러 명이 나오는 등 가정 파탄 상태인 집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오씨는 투자자들이 반발하면 "올해 대선을 전후해 비자금 사무소에서 100억원이 배당된다. 하지만 나를 고소하면 돈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면서 거꾸로 투자자들을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신의 보스가 검찰과 경찰에 손을 써놓았기 때문에 신고를 해봐도 소용이 없다는 말도 했다고 한 피해자는 전했다.

◇대통령 출장 갔다며 특판 행사까지

오씨는 투자자를 끌어들이려 대통령의 해외 순방까지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여름 대통령이 외국 출장을 떠나자 오씨는 서울사무실의 '보스' 등 간부들이 대통령을 수행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팀장이 자체적으로 '특판행사'를 하는데 2300만원꼴로 1000만원의 배당금이 떨어진다는 말로 피해자들의 투자를 재촉했다고 한다. 오씨는 또 미국 특수요원이 개발한 '선물투자 프로그램'이라면서 그 시스템을 이용해 투자하면 무조건 돈을 벌게 되어 있다고 자랑하면서 투자자들 앞에서 시연(試演)을 했으나 순식간에 수천만원의 손실을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는 일부 투자자들이 원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비자금 사무소에 출자금으로 들어가 있다. 곧 많은 배당을 받게 된다"는 말로 무마했다고 한 피해자는 전했다. 과거 사채업을 했던 한 피해자는 과거 권력 실세의 자금을 다룬 적이 있어 오씨에게 '어느 라인의 자금을 관리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우리는 L의원 쪽 자금을 핸들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투자자들이 삼성동 비자금 사무소라는 곳을 가보고 싶다고 하면 오씨는 "출입이 허용되지도 않고 외부에 알려져서도 안 되는 곳이다. 청와대 비자금이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겠느냐"고 핀잔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씨는 다른 투자자들을 물색하러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면서 "집에서 가만있느니 이자 몇푼 더 받아보려다 인생을 망치게 됐다."고 했다. 검찰은 오씨가 실제로 청와대 비자금을 관리한 적이 있는지, 투자자들에게 받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