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아침이었다. 모처럼 공휴일 늦잠을 푹 자고 깬 마루에서 아파트 발코니에 한 폭쯤 내려 조기(弔旗)로 걸려 있는 태극기를 보았다. 어머니는 잊지 않고 이날 아침 일찍 태극기를 내거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냥 휴일 하루로 지나치기 쉬웠을 텐데도 어머니는 그날의 의미를 묵묵히 일깨워 주고 계셨다.
가끔씩 이런 식으로 나의 무신경을 질타하듯 깨우쳐 주시는 어머니는 사실 그리 특별한 분은 아니다. 1938년 1월 1일, 경북 칠곡의 가난한 가정의 딸만 셋인 집의 맏딸로 태어나 국립 경북대 부속 간호고에서 국비를 받아 공부하고 간호사가 되셨다. 어렸을 때 광복을 맞았고 곧이어 6·25전쟁을 겪었으며, 혁명과 유신을 거치는 근대화의 과정을 직접 체험하셨다. 평생 숱한 어려움들을 헤치고 살아오시면서 당시 이 땅의 많은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노력해오신 평범한 분이다.
요즘 그런 어머니께서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하셨다. 세계경제의 환경이 이렇듯 어려워지고 있는데 또다시 IMF 구제금융 받던 시절처럼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지나 않을지를 내게 묻곤 하신다. 또 온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총력을 기울여도 국가의 미래가 불투명한 이 시기에, 애국가마저 거부하고 국가의 정체성마저 부정해온 사람들의 문제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염려의 말씀이 매일 끊이지 않는다.
몇달 전, 어머니는 가족회의를 소집하셨다. 그달에 전기를 300㎾ 이상 사용했기 때문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전기절약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환경적으로도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 자세가 문제"라는 꽤나 준엄한 가르침이셨다. 아이들과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있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머니께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이었다. 손자들의 영양과 건강을 위해 어떤 반찬을 만들까 고민하시고, 문제집을 채점해 주시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지키시고, 학생들의 자살에 마음 아파하신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대한 감사와 바른 삶의 자세를 묵묵히 보여 주시는 멋진 어머니와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진 많은 분들이 이 땅을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달러'를 벌기 위해 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