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껌 광고. 소총을 든 캐릭터까지 곁들여 이 씹는 과자가‘나쁜 병을 막아주는 파수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925년 6월 12일자)

1925년 3월 희한한 '서양과자' 광고가 조선일보에 첫선을 보였다. '리구레의 췌잉껌', 즉 껌의 원조로 꼽히는 미국 리글리(Wrigley)의 껌 광고였다. '식후에 드시면 과연 여하히 청쾌(淸快)함을 느끼는지 한번 써 보시라'는 문구와 함께 '스피어민트'와 '주시 프루트' 등 4종의 판매를 알렸다. 가격은 한 포(包)에 10전(약 2000원)이었다.(1925년 3월 19일자) 껌은 흔히 2차대전 때 미군이 각국에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1920년대 중반 이 땅에서 판매가 개시된 것이다.

근대의 물결과 함께 상륙한 서양의 맛 중에서도 껌은 달콤 쌉싸름한 '쵸코레트'와 함께 단맛의 신천지를 경험하게 했다. 인기 여배우 이애리수(李愛利秀)는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과자 중에 제일 조흔 것은 초코레트"라고 했다.(1930년 1월 1일자) 서양과자 맛에 감탄한 어느 필자는 "조선의 과자는 빙사과(찹쌀로 만든 한과의 일종), 밥풀강정, 백 년을 가야 그 타령인 고사떡뿐"이라며 우리 과자도 발전시켜 맛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1935년 1월 15일자)

처음엔 껌을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했다. '담배맛을 좋게 해 주며 끽연 후에는 입안을 청량하게'(1925년 3월 19일자) 해 주며, '목이 말으다든지 피로할 염려는 도모지 업고… 치(齒)를 백(白)케'하며(1925년 4월 17일자) '식욕을 증진하고 소화를 조장(助長)'한다고 했다.(1925년 5월8일자) 심지어 '음성을 화(和)하게 하는 고로 소리를 하시는 분이나 연설을 하시는 분에게는 가장 적당'하다고까지 과장된 표현을 했다.(1927년 4월 12일자)

그러나 씹기만 하는 과자란 퍽 생소했던 듯하다. 급기야는 "보통 과자를 잡숫는 것과 가티 잡숫지 마시고, 1개를 적어도 1, 2시간을 씹으셔야 합니다"라는 '주의사항'이 광고문에 첨가됐다.(1925년 6월 18일자) 일부 소비자들이 껌을 삼키려다 탈 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선일보 기사는 "(아이들에게) 껌은 더욱히 주지 말것"이라며 "달콤한 맛에 깨물다가 얼핏하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가 쉬워서… 심하면 생명이 위험합니다"라며 껌을 공포(?)의 존재로 설명하기도 했다.(1931년 8월 15일자) 1927년부터 껌은 3포에 10전으로 가격을 3분의 1로 낮췄다. 그러나, '삼키지 않는' 서양과자는 80여년 전 이 땅에서 대중화되기엔 어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1930년 이후로는 광고나 기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