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4시 27분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 1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김모(15·고1)군이 내렸다. 2시간 38분 뒤인 오후 7시 5분 김군은 화단에 떨어진 채 발견됐다. 15층을 비롯해 인근 3~4개 층 창틀엔 손을 짚은 자국, 올라선 발자국 등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죽음을 고민한 김군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본지가 단독으로 만난 어머니(38)는 "돌이켜보면 아들이 3년이 넘게 폭력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군의 악몽이 시작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인 2009년 4월이었다. 키 150㎝에 왜소한 편이었던 김군이 자기보다 15㎝나 큰 같은 반 K(16)군에게 달려들었다가 두들겨 맞으면서부터다. 이때부터 김군은 K의 '꼬붕' 노릇을 해야 했다. 실수하면 맞았고, 책가방을 들라면 들었다. 하굣길은 K를 바래다 주느라 10분 걸릴 거리를 30분씩 돌아갔다. 장례식장을 찾은 한 친구는 "K는 중3 때 반이 달랐는데도, 수시로 찾아와 괴롭히거나 다해 놓은 숙제를 가져갔다"고 말했다.

자살 당일인 지난 2일 PC방 CCTV 화면에 잡힌 김군의 모습. 친구들이 게임을 끝내고 서서 이야기 하는 동안 김군은 혼자 떨어져서 축구공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은 팔에 깁스를 하고도 축구를 빼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군은 유서에서 "(축구하는 날)10분만 늦어도 그녀석이 때렸다"고 적었다.

김군이 속한 축구동아리는 중학교 동창 23명이 모여 만들었다. 축구 동아리 친구 권모(16)군은 "김군은 축구를 하다가 실수하면 K에게 주먹과 발로 맞았다"며 "K가 꼬붕처럼 대하자 다른 애들도 덩달아 무시하고, 가끔 심부름도 시켰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작년부터 아들이 입술이 터지거나 멍이 들어오는 등 다치는 일이 잦았는데, 매번 '축구하다 다쳤다'고만 했다"고 했다.

김군은 친구들이 두려워 자기는 휴대전화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김군은 대신 어머니 휴대전화로 연락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문자가 오면 아들이 잽싸게 뛰어와 확인하고 지워버렸다"며 "문자벨이 올리면 늘 안절부절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 결과, 가해 학생 K는 김군이 숨지던 날 오전 7시부터 4시간 동안 김군과 축구도 하고, PC방도 갔다. PC방에선 게임을 성의없이 한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 앞에서 "야 이 새×야. 어디 한 군데 부러져봐야 정신 차리겠느냐"며 욕을 퍼부었다. 집으로 돌아온 김군은 카카오톡으로 '스스로 죽을 예정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