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홀 그린 주변에 있던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72)는 타이거 우즈(37)가 버디 퍼트에 성공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냈다. 2009년 11월 섹스 스캔들이 터지면서 우즈가 끝을 모르는 부진에 빠졌을 때도 일관되게 "타이거는 다시 골프의 중심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격려하던 대선배는 라운드를 마치고 나오는 우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즈도 평소보다 몇배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니클라우스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명장면으로 기억될 우즈의 16번홀 플롭샷 버디 상황을 물으며 "정말 멋진 샷이었다"고 칭찬했다. 우즈는 공손한 태도로 16번홀 상황을 설명했다. 이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갤러리 사이에서 다시 "고! 타이거"라는 함성이 터졌다.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마지막 4라운드에서 우즈는 전성기 시절이나 다름없는 '빨간 셔츠의 마법'을 선보이며 골프 인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4일(한국 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골프장(파72)에서 우즈는 선두에 4타차 뒤진 단독 4위로 4라운드를 시작해 버디 7개, 보기 2개로 5타를 줄여 합계 9언더파 279타로 공동 2위 안드레스 로메로(아르헨티나)와 로리 사바티니(남아공)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4일 미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오른쪽)가 대회를 주최한 잭 니클라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3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30개월 만에 우승 가뭄에서 벗어난 우즈는 10주 만에 시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우승으로 우즈는 1996년 데뷔 이후 PGA 통산 73승째를 기록해 니클라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니클라우스가 73승을 거뒀을 때는 46세의 나이로 최고령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1986년 마스터스다. 우즈는 샘 스니드가 기록한 PGA 최다승(82승)까지는 9승을 남겨 놓게 됐다. 우즈는 "니클라우스가 지켜보는 앞에서 73승을 거둬서 기쁨이 더 크다"며 "앞으로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18승) 기록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메이저대회 14승을 기록 중인 우즈는 2008년 US오픈 이후 메이저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다.

우즈는 14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US오픈에서 15번째 메이저 우승에 도전한다.

우즈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고 나서 마스터스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나란히 공동 40위에 그쳤고, 웰스 파고 챔피언십에선 예선 탈락을 해 "다시 평범한 골퍼로 돌아갔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이번 대회 4라운드를 앞두고는 감기로 39도 이상 고열에 시달렸고 매니저 마크 스타인버그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 내용은 우즈가 "10번홀 두 번째 샷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가 원하는 발사 각도와 거리, 스핀이 조절됐다"고 만족할 만큼 완벽에 가까웠다.

우즈는 2번홀(파4)에서 첫 버디를 잡은 이후 5~7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추가해 단숨에 4타를 줄였다. 8번(파3)과 10번(파4)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15번홀부터 나머지 4개 홀에서 버디 3개를 잡아내며 역전승을 이뤄냈다. 특히 16번홀(파3) 핀 15m 거리의 그린 주변 깊은 러프에서 풀스윙 플롭샷으로 버디를 잡고 공동 선두에 오르며 특유의 어퍼컷 세러모니를 했을 때 골프장은 환호성으로 폭발하는 듯했다. TV 해설을 하던 닉 팔도(잉글랜드)는 "아, 타이거의 이런 장면을 정말 몇년 만에 다시 보는 건가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까지 TV 해설 박스에 있던 니클라우스도 "샷이 조금만 길거나 짧아도 우승 경쟁에서 탈락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보기 힘든 용기 있는 샷"이라며 "지금까지 본 최고의 샷"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날 우즈와 동반 라운드를 펼친 리키 파울러(미국)는 "우즈가 긴박한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 연습 라운드 때처럼 좋은 샷들을 보여줬다"며 "이제 우즈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우즈와 연습 라운드를 자주 하는 사이인 파울러는 이날 무려 12타를 잃으며 공동 52위(7오버파)로 무너졌다.

최경주와 재미교포 존 허는 공동 19위(2오버파), 노승열과 위창수는 공동 52위(7오버파)를 기록했다.

☞플롭샷(flop shot)

공이 깊은 러프 등 좋지 않은 라이에 있을 때 공을 높이 띄우는 샷이다. 그린 주변에서 홀까지 거리가 가깝거나 내리막 경사일 때 공이 최대한 구르지 않도록 약간 가파른 스윙을 한다. 60도 웨지 등 로프트가 큰 클럽을 사용하며 클럽 페이스를 최대한 열어준다. 역시 공을 높이 띄우는 로브샷(lob shot)은 페어웨이 등 공의 라이가 좋을 때 구사하며 좀 더 완만한 스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