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 색출 작전을 도왔던 파키스탄인 의사를 놓고 미국과 파키스탄이 또 한 번 충돌했다. 미국이 '영웅' 대접을 하고 있는 이 의사에 대해 파키스탄이 '반역죄'를 적용해 중형을 선고하면서, 가뜩이나 긴장상태인 양국 관계에 새로운 전선(戰線)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23일(현지시각) 미 언론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에 빈 라덴 소재를 알려준 파키스탄 외과 의사 샤킬 아프리디는 키베르 지방법원으로부터 반역죄로 33년형을 선고받아 감옥행이 결정됐다. 아프리디는 지난해 5월 빈 라덴이 숨어 있던 아보타바드 지역에서 가짜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민들의 DNA를 채취했다. 그러면서 빈 라덴 자녀의 DNA까지 수집해, CIA가 추정해오던 빈 라덴의 은신처를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프리디는 정작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리디가 이 같은 정보를 자국에는 사전에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종의 '괘씸죄'를 적용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곧 아프리디를 구금하고 의사 직업을 박탈했다. 미 정부는 그동안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등이 나서 아프리디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프리디에 대한 33년형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파키스탄 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미국은 파키스탄이 미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반역죄'를 적용한 것은 의도적으로 미국을 자극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파키스탄은 최근 미군의 드론(무인폭격기) 오폭으로 자국민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자국 내 미군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미국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상원 군사위원장인 칼 레빈 의원은 "파키스탄이 아프리디에 대한 처벌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대(對)파키스탄 지원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아프리디의 행동은 반역죄와 거리가 멀다. 그것은 지구상의 가장 위험한 테러리스트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준 용기 있고 영웅적이며 애국적 행동이었다"고 했다.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도 "아프리디는 많은 파키스탄인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결코 파키스탄에 대한 스파이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그동안 파키스탄이 알카에다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심을 끊임없이 품어왔는데, 이번 건으로 이런 의심이 확신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