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How Deep Is Your Love)' '홀리데이(Holiday)' 등의 곡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전설적 팝그룹 '비지스(Bee Gees)'의 리드싱어 로빈 깁(Gibb·62)이 암 투병 끝에 20일 오전(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로빈 깁은 2010년 결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지만, 지난 4월 폐렴 합병증이 겹쳐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는 등 최근 병세가 악화됐었다.
비지스는 로빈이 그의 친형 배리 깁(65), 로빈보다 35분 늦게 태어난 쌍둥이 형제 모리스 깁(2003년 사망)과 함께 만든 삼형제 그룹이다. 부드러운 가성 화음과 펑크 비트의 사운드로 팝 역사상 최고의 하모니 그룹으로 불리며 1970년대 디스코 음악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2억장의 앨범을 팔았고, 그래미상에 총 16차례 후보에 올라 7번 수상했으며, 199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다.
그 중 로빈 깁은 간드러지면서도 강렬한 음성으로 형제들과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그룹을 이끈 리드싱어였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DNA가 같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완벽한 하모니를 선보인 비지스의 중심에는 보컬 로빈 깁이 있었다"고 했다.
로빈과 비지스의 음악적 재능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댄스 밴드를 관리하던 아버지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1958년 부모를 따라 호주로 이주한 삼형제는 1956년 '브라더스 깁스(Brothers Gibbs)'의 약자를 딴 'B·G·S'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시드니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1962년 그룹 이름을 비지스로 바꿨고, 1966년 싱글 '스픽스 앤드 스펙스(Spicks & Speacks)'를 발표하며 호주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67년 영국에 데뷔한 이들은 '홀리데이(Holiday)'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등을 발표하며 인기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중 곡 홀리데이는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인질극을 벌인 교도소 탈주범 지강헌이 사살되기 직전 노래 테이프를 요청한 곡으로 유명세를 탔고, 1999년 한국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들을 세계적 밴드로 만들어 준 것은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사운드트랙이다. 비평가들은 이들의 음악을 "대량 소비 시대의 저급한 통조림 상품"이라고 비판했지만, 비지스는 앨범에 수록된 '나이트 피버(Night Fever)' '스태잉 얼라이브(Stayin' Alive)'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How Deep Is Your Love)'를 연속 히트시키며 전 세계적인 디스코 붐을 일으켰다.
이 앨범은 전 세계에서 4000만장 이상이 판매돼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나간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됐고, 1982년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단일 앨범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비지스는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했고, 1997년에는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30년 동안 쌓아온 히트곡을 들려주는 '원 나잇 온리(One Night Only)' 공연을 갖고 이를 DVD로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8년 비지스 삼형제와는 별도로 솔로 활동을 하던 막내 앤디 깁이 서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고, 모리스 깁마저 2003년 수술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비지스는 공식 해체됐다.
로빈은 비지스 활동 중간 중간에도 앨범을 내며 솔로로 활동했다. 1969년 첫 솔로 앨범 '로빈스 레인(Robin's Reign)'을 냈고, 이후 3장의 앨범을 더 냈다. 해체 후에도 2003년 솔로 앨범 '마그넷(Magnet)'을 내고 활동을 이어갔고, 2005년에는 내한 공연으로 국내 팬을 만나기도 했다.
로빈은 비지스가 해체된 뒤에도 2006년 2월 형 배리 깁과 미국 플로리다에서 합동 공연을 했고, 지난 1월 30일에는 런던에서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를 위한 공연을 열었다. 지난 4월에는 타이타닉호 침몰 100주년을 맞아 아들 로빈-존과 함께 만든 첫 클래식 작품 '타이타닉 레퀴엠'을 발표하고 여러 공연을 앞두고 있었지만, 병마(病魔)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