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박람회 1851~2012
주강현 지음| 블루&노트|608쪽 |5만원
1890년대 말 미국의 한 박람회에는 아프리카 다호메이 부족 100여명이 벌거벗겨진 채 앉아있었다. 1894년 샌프란시스코박람회에서도 사모아 여인이 상체를 드러낸 채 관람객 앞에 누워있었다. 이보다 앞서 1889년 파리박람회는 전시장에 식민지촌을 재현하고, 아프리카계 원주민을 '전시'했다. 안내서에는 '백인 전시관을 보고 난 다음 기타 인종 민속촌을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 실렸다.
당시 서구제국주의 국민에게 식민지는 애국적 자부심의 원천. 만국박람회는 관람객에게 식민지에서 긁어모은 성취물을 뽐내고 제국의 은혜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인종주의의 진원지였다. 박람회장에는 언제나 인류학자·민족학자가 연구실을 차렸고, 진열한 '물품' 중엔 이처럼 사람도 있었다.
민속학·해양학·문화사 등을 두루 섭렵한 저자는 세계 근현대사 160년의 역사를 박람회를 통해 살펴본다. 정치, 경제, 과학기술, 건축 등 박람회에서 나타난 인류 지성의 진화와 각축이 1000여 컷의 도판과 함께 펼쳐진다.
◇산업 발전과 제국의 힘 뽐내는 자리
산업혁명이 불처럼 일어나면서 19세기 전반 유럽은 넘치는 물자와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했다. 한 나라는 박람회를 열어 자국의 신제품·신기술을 자랑하려 했고, 이웃국들은 질시하고 경계했다.
프랑스가 대영제국보다 20년 앞서 만국박람회를 계획하고도 접은 건 그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수비수처럼 국내시장 보호에 집중했다. 반면 세계로 촉수를 뻗은 대영제국은 1851년 런던에서 사상 최초로 만국박람회를 개최했고, 산업혁명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만국박람회는 또한 물신(物神·상품)주의의 성소였다. 사람들은 박람회에서 좋은 것을 가려내고 비교하는 시선을 익혔다. 물품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비교해가며 상품을 사들이는 버릇도 들였다. 그 틈을 파고들어 개·폐막이 따로 없는 상품박람회, 즉 오늘날의 백화점이 생겨났다.
◇근현대 도시건축사를 바꾼 박람회
박람회를 경험한 도시는 빠르게 변했다.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열린 런던은 철골에 유리창을 짜맞춘, 당시로선 전혀 새로운 건축물 '수정궁'을 세워 세계를 놀라게 했고, 1900년 파리는 센 강변을 따라 세계 각국 특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집과 궁전, 파빌리온을 지었다.
1964년 스위스 로잔은 중립국가 스위스의 군사력과 독립을 강조하기 위해 141개의 날카로운 포인트가 튀어나온 구조물을 세워 눈길을 끌었다. 1970년 오사카는 낮은 건물의 지붕 위에 거대하고 붉은 원형 탑, 일명 '태양의 탑'을 올려 일본의 발전과 위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화려한 박람회는 사라졌다. 박람회가 해내던 역할은 방송·광고·영화, 모터쇼·디지털쇼 등으로 옮겨갔다. 산업과 소비 같은 예전의 목표는 상실했다.
대신 이 시대의 박람회는 새로운 건축과 전시의 모태가 되고, 뛰어난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본향으로 존재하고 도시와 지역의 재생에도 여전한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박람회는 지구, 자연, 미래 등 애매하지만 인류보편적 주제를 내걸며 제 살길을 찾아나서고 있다. 과거 서구에서 열리던 박람회가 상하이와 여수 등 동아시아로 옮겨오는 것도 세계적 부(富)의 이동을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는 "박람회의 지난 궤적을 묻고 미래를 예측하는 고단한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567쪽)이라고 말한다.